절공 정갑손 선생에게 청렴의 삶을 배우다
절공 정갑손 선생에게 청렴의 삶을 배우다
  • 전윤희
  • 승인 2019.10.21 15: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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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직자라면 매년 일정 시간 이상 청렴 교육을 받고, 새해에는 시무식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청렴 서약을 한다. 십 수 년 간 꾸준히 교육을 받으며 참으로 복잡한 마음이 들었었다. ‘이렇게 교육과 서약이란 과정을 끊임없이 거쳐야 할 만큼 공무원 조직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뜻인가?’ 일순 의심과 씁쓸한 마음이 들다가도, ‘세상이 공무원에게 바라는 청렴성의 기준은 훨씬 높고, 공무원의 덕목 중 제일은 이거지’하며 수긍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공직자와 청렴은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면 우리의 선대에서 청렴의 모범이 될 만한 분들은 누가 있을까? 조선왕조 5백년간 녹선된 청백리는 2백여 명이 있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청렴의 상징이 되었던 한 분, 정갑손 선생을 소개하고자 한다.

 정갑손(1396~1451)은 본관은 동래, 자는 인중, 시호는 정절이다. 그는 공과 사의 구분이 뚜렷하고 성격이 충직하여 청렴하고 곧은 관리로 이름이 높았으며, 병조좌랑으로 있을 때에도 개인적인 일에 관노를 부리지 않고, 사사로운 청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사간원과 사헌부의 요직을 거치는 동안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임금에게 간언을 하는 충직한 모습을 보였고, 세종의 신뢰를 받은 정갑손은 좌승지, 중추원 부사, 예조참판, 대사헌을 거쳐 1442년에 함길도 관찰사로 파견되었다.

 정갑손 선생은 함길도 관찰사로 있을 때 왕의 부름을 받아 한양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함길도의 향시(지방에서 실시하는 과거 1차 시험)에 아들 정오가 합격해 붙은 방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과거를 진행한 시관을 엄히 꾸짖었다.

 “내 아들은 아직 학문이 부족한데 어찌 요행으로 임금을 속이겠느냐.

 자네도 평소 그것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이건 직무를 태만한 것이다.”

 그는 직접 향시 급제자 명단에서 아들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아들을 합격시킨 시관도 파면시켰다.

 아들이 관직으로 나서는 첫걸음인 향시에 합격하였다면 누구나 기뻐할 일이며, 능력이 부족하다 치더라도 권세가 있는 이들은 이를 이용해 합격시키려 갖은 방법을 쓰는 게 보통이었을 것이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누르고 공사구분을 확실히 하여 합격자 명부에서 그 이름을 스스로 지운 정갑손 선생은 아들에게 정도를 걷도록 가르친 것이다.

 나에게 청렴이란 공정한 과정에 따라 반칙이 허용되지 않는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히 보훈공무원은 보훈가족을 최대한 정중히 예우하되 보훈사업을 공정하고 성실하게 운영해야 할 것이다. 본인의 혈육이 걸린 일에도 정갑손 선생 같은 청렴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도 21세기의 청백리로서, 보훈공무원으로서의 명예를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청렴한 관리로 유명했던 중국 명나라 우겸의 사례를 하나 더 들며 마무리해본다. 천자를 알현하러 갈 때 빈손으로 가는 그에게 지역 특산물이라도 들고 가라는 지청구를 하는 이들에게 그는 시로 화답했다. “두 소매에 맑은 바람만 넣고 천자를 알현하러 가서, 백성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면하리라.” 스치는 옷깃 한 자락에 서로서로 맑은 바람만 풍겨나오는 청량한 관계, 공직생활 끝까지 그것만 볼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

 전윤희 국립임실호국원 현충과 선양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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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2019-10-22 14:33:19
좋은 글이네요. 청렴한 대한민국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