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일(克日)의 대열에 함께 서야
극일(克日)의 대열에 함께 서야
  • 무울 송일섭
  • 승인 2019.10.16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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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며칠 전 학생들을 인솔하고 중국 길림성으로 역사 문화 탐방을 다녀왔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학생들은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길림성(吉林省)는 백두산 너머에 있는 연변 조선족 자지구가 있는 지역이다. 우리가 ‘만주’라고 자주 이야기했던 지역이 바로 여기다. 학생들은 초행길이었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것 같았다. 거리마다 우리글로 표기된 간판과 안내판들을 보면서 마치 이웃마을에 놀러 온 모양 같았다.

길림성의 명동촌에 있는 윤동주 생가에서는 당시 치열했던 민족교육의 치열함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명동촌은 1899년 조선의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김약연과 김학규, 종성출신의 문치정과 남위언 등 25세대, 142명이 정착한 곳이다. 바로 이곳에 중국 내 민족교육 요람 명동학교가 세워진 것이다. 여기에서는 일제가 나라를 강탈한 것에 대한 저항과 분노가 폭발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반일 애국교육이 이루어졌다. 이 학교가 폐교되기까지 이곳에서 배출된 1,200명의 졸업생들 중에서 많은 분들이 반일의 선봉에 서서 독립을 위해서 싸웠다.

중국 길림성에서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서 투쟁했던 선열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한일관계의 복잡성을 생각하면 선열들이 목숨 바쳐 되찾고자 했던 민족정기가 제대로 발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있다. 오늘에 와서 남 탓하는 것 같아 겸연쩍기도 하자만, 우리 근대사의 비극은 온전히 일본에서 비롯되었다. 500년 넘게 이어오던 조선 왕조가 무너지면서 우리는 그들의 노예가 되어야 했다. 우리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독립을 열망했던 시인 윤동주, 모순된 현실 개혁을 통해 보다 나은 세상을 갈망했던 그의 고종사촌 송몽규는 후쿠오카 감옥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수많은 애국 투사들이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했지만, 결국 한반도는 두 동강이 났고, 그것도 모자라 동족상잔의 참혹한 6.25전쟁까지 치러야 했다. 이런 일련의 민족적 비극은 일본이 우리 역사에 무단 개입함으로써 빚어진 일들이다.

해방 74주년이 된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여전히 일본의 깊은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럽고 통탄할 일 아닌가. 친일파를 처단하기는커녕 그들을 넙죽 안아준 이승만 정권,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 조치로 일본에게 면죄부를 준 군사정권에 이어 지금도 일본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수구 친일파들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1945년 원폭 투하에 놀라서 허겁지겁 항복을 했지만, 그들은 지금껏 진정어린 참회나 반성은 보여주지 않았다. 가장 밑바닥에서 유린당했던 위안부들의 한과 눈물에 눈을 감아 버렸고, 막장의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한숨과 희생도 외면했다. 그들은 그것도 모자라 그들은 우리나라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자에 대한 배상 판결에 불복하고, 마침내 백색국가 제외라는 극약처방을 내리면서 소위 ‘기해경제전쟁’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면서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일본여행 안 가기 운동’ 등을 벌이면서 극일의지를 다졌다. 언젠가 한 번은 치러야 할 전쟁이라며 온 국민들이 결사항전의 자세로 반일대열에 앞장섰다. 불길처럼 번지는 국민들의 극일의지를 보면서 이번에야말로 결코 지지않을 것 같은 희망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친일성향의 인사들은 아베정부의 몰염치와 부당함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면서, 정부를 비난하기에 바빴다. 국민들은 구한말의 친일파들을 새로 보듯 ‘토착왜구’의 몰상식 앞에 서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국가적 위기에 앞에 온 국민이 하나로 뭉쳐도 쉬운 일이 아닌데, 마치 임진왜란 발발 직전의 동인과 서인들의 날선 공방 같은 것이 그대로 재연되었다.

정부에서는 이번에야말로 우리의 전반적인 산업구조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하였지만, 정치권에서는 서로를 비난하는 설전만 가득했다. 게다가 두 달 넘게 ‘조국 법무부 장관’문제로 온 나라가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요란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자 일본의 어느 관리가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한국 사람들은 ‘냄비 근성’이 있으니 곧 조용해질 것이라는 말이다. 어쩌면 지금 그대로 맞아 떨어지고 있다.

지금은 이미 사퇴해버렸지만, 한 개혁인사의 의혹을 감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집요하게 추적하면서도 국가의 운명이 걸린 문제는 저리 쉽게 내팽개치다니 놀랍다. 이번에는 반드시 제대로 된 대 일본전략을 세우고, 친일 사대의 낡은 구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본의 경제전쟁은 우리의 생존권이 달린 중요한 문제다. 정치권의 구태로 인해서 문제가 매몰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가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과 검찰, 국회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갑론을박해야 할 만큼 절실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의혹에 대해서는 이미 수사가 진행된 만큼 거기에 맡겨두면 될 일이다. 하루 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국가와 국민의 삶에 대하여 깊이 있기 성찰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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