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스탄불에서 온 편지
#7. 이스탄불에서 온 편지
  • 서병조
  • 승인 2019.10.15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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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왜 이스탄불로 갔는가

 대금을 잡은지 어느덧 30년이 되었다. 그동안 외길만 고집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 돌이켜보면 정작 포기하고 살아온 것이 참 많았던 시간이었다. 국악이라는 전통음악을 가지고 시름하다보니 때로는 시대적 요구에는 뒤처지는 느낌을 받으며 늘 아쉬움이 남았다.

 흔히들 음악은 만국공통어라는 표현을 하지만 전혀 문화가 다른 타국에서 우리의 악기로 음악을 연주한다면, 나의 음악에 대한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다. 해외에 대한 경험도 전혀 없고, 버스킹도 한 번도 시도해본적은 없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문물이 공존하는 이스탄불에서 평생을 해온 국악을 현재와 어떻게 크로스오버 할 것인가는 늘 고민을 풀어내보고자 했다.  

 이스탄불의 첫인상은 참 신비로웠다. 알라딘에서 거대한 지니가 튀어나와 순식간에 만들어 놓은 것처럼 영화 같으면서도 켜켜이 쌓인 시간이 용광로처럼 뭉쳐져 있는 도시이다. 8일간의 여정 속에 나는 어디까지 음악 보따리를 풀어놓을 수 있을까?

 # 무질서 속의 질서

 사람과 차 사이에 암묵적 협의가 되어 있는 듯 신호와 상관없이 모두들 자연스럽게 활보한다. 주인 없는 개와 고양이도 아무 거리낌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햇볕 좋은 곳을 선점하고는 드러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견공들이 자주 목격된다. 이스탄불에서 만난 개 한 마리는 호위하듯 한나절을 내 곁에서 머물다가 해 질무렵에야 유유히 사라져 ‘집시 개’라는 별명도 지어줬다. 내가 연주하는 동안 이 집시 개는 몸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햇볕을 쬐다가 바람 냄새를 맡으려는 듯 하늘을 향해 킁킁거린다. 그러다가도 연주를 들으려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하면 경계하듯 컹컹 짖어대는데 저녁 무렵에는 미련없이 나를 버리고 제 갈 길을 간다. 이스탄불에서는 사람도 동물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묘한 질서를 이루는 ‘공존의 철학’을 터득한 듯 했다. 마치 ‘시나위’ 같다. 시나위는 언뜻 들으면 무질서한 음악처럼 보이지만 즉흥적이면서도 감정을 고도로 정제하여 서툴지 않은 노련한 기품이 있고, 악기들이 다투듯이 치고 빠지며 장단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조화로운 음악이기 때문이다.

 # 첫 번째 버스킹

 이번 여행을 위해 2개로 나뉘어지는 특수제작한 분절대금을 가지고 갔다. 대금은 크기가 커서 총기류로 오해를 받을 수 있어 휴대도 용이하고 불필요한 의심도 받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처음 버스킹 장소를 선정하는 것은 공연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다. 사람이 적어도 문제지만 너무 많아도 소음이 커서 연주의 집중력과 호응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히드로폼 광장에서 도전한 첫 번째 버스킹은 기대 이상이었다. 터키의 전통음악과 익숙한 서양음악 멜로디가 우리의 전통악기로 섬세하게 표현된 점을 놀라워했고, 한국에 대한 호감과 관심도 생각보다 높았다. 고수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오히려 예상치 못한 복병은 더위였다. 따가운 햇빛에 연주를 위해 입었던 생활한복을 껴입었고, 예의상 모자도 쓸 수 없었기에 얼굴이 빠알갛게 익었다.

 # ‘아야소피아’ 이스탄불의 심장을 만나다.

 한참을 기다려 입장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넋이 나간 듯이 멈춰 섰다. 황홀하다고 해야 할까. 아야소피아에 들어서는 순간 웅장하면서도 압도적인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정복자의 눈에도 허물어버리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는지 어설픈 타협으로 그리스도와 알라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격렬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지금은 성당도 모스크도 아닌 박물관으로, 그리스도인에게도 이슬람인에게도 멀리 동양에서 온 나에게도 아야소피아는 활짝 개방되어 있다.

 멀리 아야소피아가 보이는 술탄 아프멧 광장에서 ‘위스퀴다르’를 단소로 연주했다. 이스탄불에서 버스킹을 보는 것은 흔치 않았다. 인디언 복장의 악사들이 드물게 작은 공연을 할 뿐이었는데 아마 직접 나서는 것을 꺼리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터키에서는 우리의 아리랑과 같은 정서가 있는 전통곡이라서인지 호응이 크다. 관객들의 요청에 따라 엘콘도파사, 썸머타임, 우리 민요까지 즉흥연주를 이어갔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큰 호응과 우리악기에 대한 관심에 서투른 영어로 이것저것 설명을 했다. 가끔 돈을 놓고 가는 이들도 이었지만, 쑥스러워 연주만 할 뿐이라 정중히 거절했는데, 단순한 선의를 상처주지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익숙한 멜로디에는 더 큰 박수를 보내주었고, 많은 이들이 나의 연주사진과 나와 함께 사진찍기를 원했다. 아직 초짜 버스커인 나는 미쳐 인증샷이란것도 남기지 못해 아쉽다.

 

 글 = 서병조

 ※‘예술배낭여행’은 수요일자 문화면을 통해 완주문화재단의 웹레터와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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