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현충시설 : 남원 항일운동기념탑
우리고장 현충시설 : 남원 항일운동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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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1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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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 항일운동기념탑

 

  1919년 3월 2일 서울에서 전달된 독립선언서는 남원 오수에 사는 천도교 전도사 이기동에 의하여 그날 새벽 덕과면 사율리에 거주하는 이기원·황석현·황동주에게 전해졌다.

  이기원은 독립선원서 40장을 전달받아 남원읍 금리에 있는 천도교구로 찾아가 교구장 유태홍에게 전달하고, 교인 유석·김성재 등 8명으로 하여금 독립 선언서를 군내 각 마을에 배포하도록 협조를 구하였다.

  황석현은 이기동으로부터 받은 독립선언서를 보절면의 천도교인 김덕인과 함께 그날 밤 보절면사무소와 헌병분견대 앞 게시판에 부착하였고, 황동주는 사매면의 천도교인 문경록과 함께 면의 곳곳에 붙임으로써 면민들로 하여금 3·1운동의 거족적인 의의를 주지시켰다.

  그러나 일제 관헌들의 엄한 경계와 감시로 집단적인 거사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3월을 넘기고 말았다.

  당시 덕과면장 이석기는 일제하의 면장직을 부끄럽게 여기던 차에, 오수보통학교에 교사로 재직 중인 조카 이광수와 상의하여 은밀히 만세운동 준비에 들어갔다. 격문의 초안과 군내 각 면의 면장에게 보낼 호소문을 작성하고, 면내 구장회의를 주재하는 등 1919년 4월 3일 식목일을 기해 덕과면에서 만세운동을 벌일 것을 계획하였다. 

  4월 3일 이석기의 선창으로 군중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500여 군중이 사매면 헌병주재소로 진출하였다. 같은 시각에 사매면민들도 이에 합류하여 시위 면민은 800여 명이 되었다.

  남원헌병대는 무장하고 군중을 향해 발포하였고, 이석기 면장 등이 체포되고, 면민들은 일단 해산하였다.

  이성기·이두기·이범수·장경서 등은 4월 4일 남원 장날에 다시 궐기할 것을 결의하고 재차 시위 준비에 착수하였다. 4월 4일 남원 시장 안에 수천 명의 군중들이 모여들었고, 오후 2시경 이두기의 만세 선창으로 군중들은 총궐기하였다. 일부 광한루 광장에 모인 군중도 같은 시각에 시위를 벌였다. 이에 증파된 헌병대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다.

  일제의 압제 속에서도 조국의 광복을 위해 독립만세를 외쳤던 남원출신의 항일 애국선열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남원 4·4운동의 함성이 울려퍼진 곳(현재 남원교육문화회관)에 2005년 10월 ‘남원항일운동기념탑’을 세웠으며, 국가보훈처에서는 2006년 4월 24일 현충시설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전북동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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