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3대 명주 ‘죽력고’ 명맥… 송명섭 명인
조선 3대 명주 ‘죽력고’ 명맥… 송명섭 명인
  • 김장천 기자
  • 승인 2019.10.0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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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력고 가공 송명섭 명인
죽력고 가공 송명섭 명인

 #. 죽력고는 대나무를 토막 내 불을 지펴 흘러내리는 대나무즙(죽력)에 댓잎, 솔잎, 생강, 석창포 등을 넣고 소주를 내려 증류시킨 술이다. ‘고’는 최고급 약소주에만 붙일 수 있는 술의 극존칭으로, 그 명성이 뛰어나다.

 우선, 죽력고는 고전 ‘춘향전’에서 소개된다. 춘향이 자신의 집을 찾은 이몽룡에게 주안상을 올리는 데 ‘죽력고’라는 이름의 술이었다.

 그리고 우암 송시열이 자신의 산문집 ‘송자대전’에서 죽려고를 일컬어 ‘진시절미(眞是絶味)’라고 극찬했다. 진시일미는 ‘이 시대에 있어 진실되고, 절대적인 맛’을 의미한다.

 중풍과 기력 회복과 함께 어혈(막힌 혈관)에 큰 효험이 있다고 전해지는 죽력고는 동학농민혁명에서도 소개된다. 실제 구한말, 우국지사인 매천 황현이 남긴 책 중 동학농민전쟁을 기록한 오하기문에 녹두장군 전봉준이 일본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서울로 압송당하면서 부상당한 몸을 회복하기 위해 죽력고를 찾았다고 적혀 있다.

 “죽력고는 우리 민족 생활의 일부분으로, 민족의 술입니다. 전통적 문화 가치로서 보존하며, 함께 공유하고 즐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내가 죽력고를 만들었다고 나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으로 생각해 줬으면 합니다.”

 육당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에서 이강주, 감홍로와 더불어 조선3대 명주로 꼽은 죽력고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명인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식품명인 48호이자 전북무형문화재 제6-3호인 송명섭 태인합동주조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송 명인의 집에 들어서자 수많은 항아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현관 입구에는 ‘지방무형문화재’임을 증명하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죽력고를 빚게 된 내력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송 명인은 기분이 좋지 않은 듯 불쾌해했다.

 그는 “죽력고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이다. 문화란 한 시절의 보편타당한 것으로 개인이 아닌 우리가 공유하고 것”이라며 “죽력고가 ‘내 것’이라면 기술자로 불리는게 맞지만, 죽력고는 내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죽력고가 어느 개인의 기술로 만들어지는 ‘기술자의 술’이 아닌 전통문화라는 송 명인의 확고한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이어 “어쩌다 보니 맥이 끊겼고, 다행스럽게 명맥을 이어오게 된 것뿐”이라며 “예전에는 우리나라 어느 집에서나 빚던 술이 죽력고였다”고 덧붙였다.

 송 명인은 죽력고 재료로 ‘메이드 인 전북’을 고집하고 있다. 주 재료는 ‘쌀+댓잎+솔잎+죽력+생강+석창포’다.

 우선, 전통주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쌀은 송 명인이 직접 농사지은 것으로 매년 30톤가량이 소요된다. 댓잎은 자신이 직접 가꾸는 대나무에서, 솔잎은 주변 산에서 가져오며, 생강은 주변 농가에서 직접 공수해 온다. 석창포는 한약재료상 등에서 들여온다. 특히 여러 재료중 가장 중요한 ‘죽력’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방법으로 그가 직접 만든다.

 죽력고는 빚는 과정이 까다롭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격변의 시대를 지나면서 명맥이 거의 끊기게 됐으며, 지금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송 명인의 손에서만 빚어지고 있다.

 송 명인과 죽력고의 인연은 한약방을 했던 외증조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증조부는 치료에 도움이 될만한 술의 비방을 모아 치료보조제로 사용했고, 그 중 하나가 대나무 액(죽력)을 이용한 술, 죽력고였다. 이 죽력고 제조법은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물려받았고, 어머니는 태인양조장을 운영하는 송씨 가문으로 시집을 오면서 자연스럽게 송 명인에게 전승됐다.

 송 명인은 “어린 시절, 어머니는 ‘뒷산에 가서 솔잎을 따와라, 대나무밭에서 잎을 가져오너라’ 심부름을 시켰다”며 “민초들의 삶에서 술은 약으로 사용됐는데 이 가운데 대나무 액을 이용한 죽력고가 가장 유용했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가 내린 것도 죽력고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죽력고의 핵심인 ‘죽력’은 청죽을 마디마디 자르고, 여러 조각으로 쪼갠 뒤 항아리에 넣은 뒤 3~4일 불을 쬐면 대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을 말한다. 여기에 솔잎과 대나무 잎, 생강, 계심, 석창포 등을 넣고 소주를 내리는 방법으로 증류시켜 만드는 것이 ‘죽력고’다. 소줏고리 안을 채운 뒤 전통방식으로 빚어내 30일간 숙성한 가주를 끓이는 솥에 얹어 끓어오르는 술이 이를 통과하면 드디어 죽력고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술을 ‘고’라는 명칭이 부여된다. ‘고’는 최고급 약소주에만 붙일 수 있는 술의 극존칭이다.

더욱이 송 명인이 빚는 술에는 그만의 원칙과 소신, 전통문화가 함께 담겨 있어 더욱 특별하다.

 송 명인은 ‘고(떡시루 안에 술과 약재를 혼합해 증류)’와 ‘로(술덧과 약재가 분리된 채 증류)’, 그리고 ‘주(술 속에 약재가 들어감)’라는 약소주를 설명하면서 이 가운데 단연 으뜸은 ‘고’라고 자신했다.

 송 명인은 죽력고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딴 ‘송명섭 막걸리’도 빚어내고 있다. 이 막걸리 또한 그의 열정과 노력의 결집체이다.

 송명섭 명인은 “전통을 지키고, 계승하는 일과 함께 원형을 지키고자 하는 일에는 무엇보다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며 “전통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울 수 있도록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장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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