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와 촛불
독도와 촛불
  • 황진
  • 승인 2019.10.06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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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사람들은 인류학적으로 유대인 이상으로 독특하고 그들 못지않다. 그들은 매사에 치밀하고 용의주도하여 거의 틈을 보이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들의 국운도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수백 년 이상 국가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일왕가가 그것을 손에 넣어 국민 총화를 이루었을 때 서양문물과 결합하여 국력의 빅뱅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메이지유신의 일본 근대화였다.

 그들은 끊임없이 독도문제를 일으킨다. 역시 탁월한 전술과 전략의 시점과 도발 수위다. 그리고 그 도발 수준을, 여러 가지 근거 상 이야기 자체가 될 수 없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충분히 공세적 소재로 삼고 있는 그들의 북방 4개 섬 영유권 문제와 동일선 위에 놓아버렸다. 더욱 효과적이게도 진실을 일부분이나마 아는 기성세대가 아니라 역사의 지식이 없어 거짓을 사실로 믿으면 진실이 되는 미성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일본의 독도에 대한 도발이 경제적, 군사 전략적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근세 동아시아에서 이웃나라들에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었던 자국역사에 대한 반성과 후회가 없는 긍정이고, 그 부활에 대한 공개적인 포고이다. 그들이 과거에 대한민국과 한반도에 갖고 있던 감추어둔 지향의 드러냄이고, 그 일관성의 연장과 강화이다. 과거 임진왜란 때 왜는 명나라에게 조선을 분할통치하자고 제안했었고 1905년 7월 일본 수상과 미국 육군장관은 도쿄에서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통치상의 안전을 보장해 주고, 미국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보호권 확립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가쓰라-태프트밀약’을 맺었다. 심지어는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도 한반도만큼은 내놓지 않으려고 연합국에 여러 방식으로 청원했었다. 하지만 세상사가 그렇듯이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부도덕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그들의 자유다. 어디 인류역사가, 특히 국제관계가 도덕이나 이타성에 근거하여 처리된 적이 있었던가. 혈맹이라는 미국을 의존했다가 번번이 뒤통수를 맞고 있는 현실이 이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결국 모든 문제의 중심은 우리 내부에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그래서 그 권력은 국민 대중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사실 이것은 크고 작은 모든 권한의 당위이고 대의가 되어야 한다. 이 당위에 대한 끊임없는 현재화가 역사이고 그 확대와 심화가 그 발전이다. 그 밖의 모든 권력은 속박이고 압제이고 국민에게는 악이다. 러시아 작가 푸쉬킨이 그의 소설 ‘대위의 딸’에서 작중인물인 농민군지도자 츄카초프의 입을 빌려서 진정한 러시아는 모스크바에 있지 않고 여기에 모인 우리들에게 있다고 했다. 일제강점기에 진정한 민족은 지위는 없으나 정신만은 강건하여 정처없이 유랑하던 한 줌도 되지 않던 독립지사들 속에 있었던 것처럼. 지난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킨 것은 명나라 군사도 아니고 압록강을 건너기 위해 의주로 피신한 선조의 조정도 아니라 권세는 없었으나 강직했던 재야의 글 읽는 선비와 민초들이었다. 또다시 독도문제가 상징하는 오늘날 한민족에게는 재야의 민초들이 능력이고 희망이고 미래다. 한 가닥 가냘픈 바람에도 꺼지나 뭉치면 끌 수 없는 촛불이다.

 21세기 최강 일본의 과거가 운이 좋아서였다고 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일천한 이해이다. 그들도 메이지유신을 하기까지 내부적으로 수많은 갈등과 건곤일척의 결정적인 대치가 있었다. 당시의 그들의 촛불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대의가 승리할 수 있도록 멸사봉공의, 각고의 노력을 다하였다. 그들의 융성한 국운은 이렇게 창조되었다.

 그 나라의 국운은 국민들의 의식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우리의 촛불들은 이것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이 시대에 우리의 국운을 결정하고 동아시아에서 우리가 그들과 대등해질 수 있고 더욱 앞서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은 남과 북의 결집이다. 그리고 결집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은 화해와 소통과 협력이다. 긴 역사 속에서 민족에게 이념은 아침 안개일 뿐이다. 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역시 촛불들이다.

 진정한 경쟁과 승리와 번영은 절대가치에 근거한다. 누가 더 부하고 더 큰가가 아니라 누가 더 진정한 인간인가에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촛불들이 대적해야 할 상대는 보수 국내 수구세력이 아니다. 참 상대는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가 아니라고 고백하고 사과하는 일본의 촛불들이다. 칼의 나라가 아니고 붓의 나라인 대한민국. 진정한 번영은 칼이 아니라 붓이고, 그것의 확대와 심화이다. 이것이 근대성의 원천적 바탕이고 역사발전이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다. 우리의 촛불들은 이것으로 그들과 승부하고 승리해야 한다. 이것이 독도가 우리의 촛불들에게 요구하는 진정한 승부이다.

 황진<군산 혁신성장 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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