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동인과 전원다방
토요동인과 전원다방
  • 이복웅
  • 승인 2019.10.0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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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이후 군산은 급속하게 변화를 가져온다. 명치정 1정목 (현 중앙로1가)에 있는 일본식 ‘나가야’(한 지붕아래 여러 집이 붙어있는 형태의 장옥) 건물인 ‘이즈모야’ 건물 일부에 1948년 무렵 빵집 이성당이 이전 해 오고 이어 옆집으로 조선인이 주인인 신식 찻집, 다방이 들어서게 되어 장안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것도 엔가나 유행가 위주에서 클래식 음악다방이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일본인들이 물러나고 군산비행장에 수원, 오산 비행장에 있었던 미군들이 군산비행장으로 이동하면서 미군의 깡통경제가 군산의 경제를 좌지우지 하던 시절에 전원다방은 항구의 멋쟁이들이 중절모를 눌러 쓰고 마도로스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서양식 흉내를 내던 곳이었다. 이 전원다방은 군산경찰서 옥봉 지서장을 지낸 홍 아무개였는데 그는 음악을 무척 좋아해 클래식을 감상하러 오는 손님들에게 계란 노른자가 떠 있는 모닝커피를 곧잘 서비스하곤 하는 친절한 고전음악 애호가였다. 그의 처 또한 군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음악과를 졸업한 미모와 지성을 갖춘 당대의 인텔리 여성이었다.

 그는 항상 서양음악 중에서도 클라식 고전음악을 틀어 줘 다방의 격조를 한층 높여 주었다. 이 격조 높은 전원다방에 군산의 모던 신사들이 들락거렸다. 6.25전쟁으로 북에서 피란민들이 군산으로 내려오고 서울을 비롯한 경향 각지에서 군산으로 피란을 오던 격동의 시절 전원다방은 1950년대 군산 사람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곳이기도 했다.

 이 무렵 군산중학교 4학년을 중퇴한 고은은 군산항 미군 항만사령부 경비근무를 하면서 자살과 밀항을 반복하며 실패하고 항구의 유랑자로 떠돌던 시절 국민 동요 <반달>을 작곡한 윤극영을 우연히 만났던 장소가 전원다방 이었다 윤극영은 한국전쟁이 터지자 군산으로 피난와 구형택시 4대로 중앙로에서 택시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그는 고은과 첫 만남에서 “항구에는 시인이 있어야 하지요 시인이 없으면 항구는 적막하고 쓸쓸 합니다”라고 격려를 한다. 그 후 두 사람은 매일 전원다방에서 만나다시피 하였다. 윤극영은 만주 할얼빈과 동경 유학시절의 경험담을 들려주곤 했었다.

 당시 나이 열아홉이던 고은은 나이답지 않게 일찍 조숙하여 광동기술학교(군산북중)에서 국어와 미술을 가르치는 교사로 특채되었던 시절이다. 윤극영을 만나러 매일 같이 다방에 나오던 이종록(전 군장대학장)이 약관 고은에게 본인이 설립한 군산광동기술학교(비정규 중학교과정)에 선생으로 와 달라는 청에 따른 것이다. 이는 이종록이 군산중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고은이 그의 밑에서 배웠던 학생으로 이를테면 사제지간인 셈이다 고은이 이 다방을 자주 다녔던 것은 다방 레지(종업원)의 미모에 홀딱 반했기 때문 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백 한번 못하고 가슴 속에만 그녀를 그리워한 채 ‘솔베지노래’만 계속하여 틀어 달라고 하여 오죽하면 ‘솔베지‘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고은은 이 곳을 회고하면서 ”다방이란 참 좋은 것으로 생각했다. 선술집만큼 좋지 않았으나 반듯하게 다리미질 한 양복을 입고 니까오리(중절모) 모자를 눌러 쓴 채 몸을 깊숙이 파묻으며 담배를 피우는 거드름이 아주 근사하게 보였다. 이 다방 아가씨는 늘 맛깔스런 투피스를 받쳐 입었으며 둔부의 동작이 볼만했었다. 나는 여기서 이종록을 만났다“(경향신문 기사중에서)라고 회고 한 바 있다. 또한 이 다방에는 목련 송기원도 자주 다녔다. 그는 해방전 만주 길림성에 있는 <만성일보> 신문사 기자를 그만두고 전매청 군산지청 감시과장을 맡고 있었다. 송기원은 속눈썹이 우수에 젖어 있는 듯하여 기품이 있어 보이는 로맨티스트였다. 그는 곧잘 ‘폴 발레리’시를 읊었다. 그가 시문학의 산실인 토요동인회와 인연을 맺은 것도 전원다방이었다. 고은이 어느 날 윤극영을 만나러 갔다가 다방 입구에서 중년 신사인 송기원과 맞부딪히게 된다. 수인사로 “나는 시를 쓰는 사람이오 ‘폴 발레리’의 시를 좋아하지요”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자주 만나자며 다음에는 당신 시를 보고 싶으니 가져 오라고 했다 이로 인한 인연으로 송기원과 고은은 이곳 전원다방에서 자주 만났다 목련 송기원은 이 무렵 토요동인회장을 맡고 있었다 목련의 권유로 고은은 처음으로 토요동인회에 가입을 한다. 그 후 개복동 비둘기 다방에서만 가졌던 토요동인회 모임은 전원다방에서도 열리게 되었다.

 이복웅<(사)군산역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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