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뫼의 웃음
말뫼의 웃음
  • 조배숙
  • 승인 2019.10.0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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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년간 도시를 떠받치던 조선소가 문을 닫았다. 90년대에는 실업률이 22%까지 치솟았다.

 당시 도시를 상징하던 세계최대의 골리앗 크레인은 현대중공업이 해체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단돈 1달러에 사들였다.

 시민들은 크레인이 해체되어 운송선에 실려 바다 멀리 사라지는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국영방송은 그 장면을 장송곡과 함께 내보내면서 ‘말뫼의 눈물’이라고 했다.

 스웨덴 말뫼시 이야기다.

 이후 말뫼시가 조선소 부지를 인수하여 창업지원센터로 활용하고 신재생에너지, IT 산업 등에 과감하게 투자하면서 도시경제가 부활했다.

 2007년에는 유엔환경계획(UNEP)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었다.

 ‘말뫼의 눈물’이 ‘말뫼의 터닝’, ‘말뫼의 웃음’으로 바뀌었다.

 비결은 인재(人材)에 있었다. 눈물을 웃음으로 바꾼 말뫼시의 자율적인 산업혁신전략은 다름 아닌 ‘사람투자’에 있었다.

 1994년부터 19년간 말뫼시를 이끌었던 일마 리팔루 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유망한 산업을 찾아내느냐고요? 그런 토론은 가장 피해야 할 종류입니다. 누구도 그 답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어떤 산업을 끌어올지 고민하지 마십시오. 젊은 세대가 몰려와 공부하고 일하고 잘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드세요. 말뫼시는 이들을 위해서 도시를 정비하고, 사회안전망을 잘 다듬어 나가는 데 주력했습니다.”

 2019년 현재,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50%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 수도권 집중화는 이미 그 임계점을 넘어섰다.

 임계점을 넘어선 수도권 집중화는 수도권의 과포화를 넘어 지방마저 빠르게 소멸시키고 있다.

 수도권 집중이라는 폭주 열차를 지금 멈추지 못하면 머지않은 미래, 지방소멸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부활시킨 지방자치는 정치적 의미의 지방자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내용으로 일보 전진을 이루었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초연결 세상의 지방자치는 이전의 지방자치와 확연히 달라야 한다.

 지방소멸을 막고 수도권 집중의 폭주 열차를 멈춰 세울 수 있는 혁신적 지방차치, 지방분권 실현이 요구된다.

 벤처 붐이 불기 시작한 90년대부터 전국 어디에나 창업보육센터, 테크노파크, 산학연 클러스터, 창조경제혁신센터 등 유사한 기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 같은 유사중복 현상은 중앙정부에 의해 계획이 수립되는 데서 기인한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수립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에 급급할 뿐이다.

 정작 자신들에게 필요한 차별화된 산업 전략도 세울 수가 없다.

 21세기형 지방자치는 지방이 자율적으로 산업혁신전략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4차산업혁명의 열쇠는 인재에 달렸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우리 산업화의 신화도 인재양성에서 시작되었다.

 인재양성과 과학입국을 위해 만든 조직이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다.

 1966년 설립되어 53년이 지났다. 정부는 국가가 가진 자원을 투자하여 KIST를 통해 과학과 기술을 개발해 미래먹거리를 개척했다.

 정부가 앞장서 개발한 과학과 기술들을 민간에 제공하며 한강의 기적을 일궈낼 수 있었다.

 이 시기 정부는 어떠한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관련 기술들을 개발해야만 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추격경제 시기에는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맞았으나 현재엔 적합하지 않은 방법이다.

 더 이상 국가가 경제발전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산업정책을 20세기적 방식을 고집할 수 없다.

 중앙정부가 모든 걸 결정하고 지방은 따르기만 해야 하면 수도권 집중화도 멈출 수 없고 지방소멸 또한 막을 길이 없다.

 지방정부가 지역의 자산과 자원을 활용한 자율적인 산업 혁신을 이루는데 국가는 뒤에서 지원해야 한다.

 민간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국가는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21세기 방식이다. 지방과 민간 영역에서 일하는 인재들이 맘껏 일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중앙정부 스스로 자신이 가진 권한을 과감히 지방정부에 이양해야 한다.

 4차산업혁명의 새로운 길은 수도권과 지방 모두 상생과 공존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

 조배숙<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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