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全州)
전주(全州)
  • 장상록
  • 승인 2019.09.29 12: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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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전주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하면 대부분의 타향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전주, 양반 도시죠.’ 비빔밥과 한옥마을 그리고 양반의 고장. 물론 전주를 이런 말로만 형용할 수는 없다. 한국사에서 수도(首都)를 경험한 도시는 몇 안 된다.

  전주가 그 중 하나다. 고려 현종(顯宗)이 거란군 침략으로 몽진(蒙塵)길에 삼례역에 이르자 전주절도사 조용겸(趙容謙)이 야인 옷차림으로 현종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때 박섬(朴暹)이 현종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주는 곧 옛 백제로서 성조께서도 미워하셨으니 주상께서는 행차하지 마소서.” 현종은 이에 따른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당시까지도 여전히 삼국유민의식이 남아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논란이 되는 고려 태조(太祖)의 ‘훈요 10조’에 대한 잔상이다.

 조선 개국 후 전주의 위상은 고려의 그것과는 차이가 생긴다. 전주의 위상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사료가 있다. <국조보감>에서 양성지는 상소를 통해 정책 제안을 한다. 그는 세조(世祖)에게 19가지 사항을 건의하면서 ‘천지신명에게 제사 지내는 일’ 다음으로 이렇게 말한다. “한성을 상경으로, 개성을 중경으로, 경주를 동경으로, 전주를 남경으로, 평양을 서경으로, 함흥을 북경으로 정하는 일”

 조경단과 경기전 역시 전주의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산이다.

  영조(英祖) 47년인 1771년 왕은 노구를 이끌고 전주로 떠날 조경묘 위판에 대한 작헌례를 행한다. 실록에는 이날 영조가 “신련을 용주(龍舟)에 봉안(奉安)한 후 네 번 절하여 하직하고는 사장(沙場)에 부복(俯伏)한 채 오랫동안 목이 메어 울었다.”고 적고 있다. 말미에 사관(史官)은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사공(司空)의 묘우(廟宇)를 전주(全州)에 처음으로 설치하는 일은 1천여 년 후에 있게 되었다.” 이렇듯 조선 후기에도 전주의 위상은 굳건했다.

 장유(張維)는 그의 문집에서 전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주 고을은 토지가 광대하고 인구와 물자가 풍부한 만큼 그야말로 호남에서 으뜸가는 지역이라 할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장유가 전주에 대해 비판적인 모습을 보인 부분이다. 그는 전주 백성들이 ‘성질이 새매처럼 사나워 걸핏하면 송사(訟事)나 일으키고 있다’거나 ‘큰 호족(豪族)들이나 중간 계급의 교활한 자들이 빈약한 백성들을 부려먹고 제멋대로 주무르고 있는데 그 숫자를 또한 이루 헤아릴 수가 없는 실정이다’면서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다스리기 어려운 점에 있어서도 호남에서 으뜸을 차지하고 있다.”

  장유가 언급한 부분은 후일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언급과도 일면 통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조선 삼대폐(三大弊)의 근원은 호서 사대부, 관서 기생, 그리고 전주 아전이다.” 전주의 경제적 풍요가 착취의 토양이 된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후일 동학농민전쟁이 발생하는 근원지가 된 이유기도 하다.

  후백제의 수도, 조선 왕조의 발상지, 호남의 대표 도시 그리고 착취의 대상까지 전주의 모습은 다양하게 남아있다. 그럼 지금 전주의 모습은 어떠한가. 아무리 봐도 조선 시대 호남을 대표하던 도시의 위상은 아니다. 전국적인 부분에서의 추락은 그 보다 더하다. 이제 고민해야 할 부분은 현재의 전주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에 있다. 교육과 문화도시, 그것을 위해서도 경제적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다. 곳간이 빈곳에서 예술과 교육을 논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전주는 여전히 매력적인 도시지만 조선인들에겐 더욱 그랬다.

  정약용(丁若鏞)은 ‘전주를 지나며(過全州)’라는 시에서 전주를 이렇게 극찬하고 있다.

  큰 나라라 왕 자취 환희 빛나고 / 大國昭王跡,

     이름난 성 길손 눈 휘둥그레져 / 名城壯客眸  (중략)

   아름답네 풍패의 거룩한 이름 / 洵哉?沛號,

    두 문의 머리 위에 휘황찬란해 / 輝赫二門頭

  다산(茶山)이 이토록 찬양한 도시가 있었던가. 누군가에게 전주는 칸트가 평생을 머문 쾨니히스베르크 같은 곳일 수도 있다.

  전주를 아름다운 도시로 만드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장상록 / 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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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수 2019-09-29 22:01:38
잘읽었습니다
역사이야기 재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