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비(白碑)에서 청렴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다
백비(白碑)에서 청렴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다
  • 안주희
  • 승인 2019.09.2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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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여름에도 청렴한 기운이 넘치는 장성에서 청탁금지법 교육 및 선조들의 청백리 정신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전남 장성군은 호남을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비의 고장이자 청백리의 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장성군 삼계면 출신 청백리 삼마태수(三馬太守) 송흠(1459~1547) 선생의 호는 ‘멈출 줄을 아는 집’이라는 뜻을 지닌 지지당(知止堂)이다.

 선생의 호는 노자의 도덕경 제44장 ‘만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따라서 오래 갈 수 있다.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와 맞닿아 있다. 멈출 줄 아는 것이 곧, 청렴과 검소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송흠 선생도 자신의 호처럼 멈춤을 미덕으로 알고 평생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한 고을의 수령이 부임할 때나 이임할 때 그 고을에서 말 일곱마리를 바치는 것이 관례였으나, 송흠은 부임할 때 본인과 어머니, 그리고 아내가 탈 말 세 마리만 타고 간소하게 행차해 삼마태수(三馬太守)라 불리었으며, 51년간 내·외직의 관직생활을 하면서 근무한 곳마다 청렴한 성품으로 일곱 번이나 청백리로 녹선되기도 했다.

 이번 교육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3대 청백리 중 한명인 아곡 박수량(1491~1554) 선생, 그리고 그의 ‘백비(白碑)’이다.

 박수량 선생은 지금의 장관급인 한성판윤, 호조판서 등 39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어머니가 살고 있는 시골집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은 날이 한 달에 절반이나 되고, 집은 비가 샐 정도로 청빈하게 생활했다. 그의 서울 공직생활도 궁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서울에서 변변한 집 한칸 갖지 못했을 만큼 청렴했다.

 이를 전해들은 명종은 크게 탄복해 장성군 아곡리 하남골에 99칸의 집을 지어 청백당(淸白堂)이란 이름과 함께 하사했다. 현재는 ‘청백한옥’이란 이름으로 개관해 교육생들에게 한옥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다.

 박수량 선생은 ‘백비(白碑)’ 일화로도 후대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선생의 비석엔 아무런 글자가 없어 ‘백비’다.

 선생은 세상을 뜨면서 ‘묘도 크게 쓰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명종이 크게 감동해 서해바다 암석을 골라 하사하면서 “박수량의 청백을 알면서 빗돌에다 새삼스럽게 그가 청백했던 생활상을 쓴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렴을 잘못 아는 결과가 될지 모르니 비문 없이 그대로 세우라” 명하여 ‘백비(白碑)’가 세워졌다 한다.

 이는 돌에 새길 비문 대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선생의 뜻을 깊이 새겨 후세에 전하고자 한 것이다.

 박수량 선생의 ‘백비’를 보니, 청렴함 그 자체를 마주보는 듯해 가슴이 찡했다.

 우리 선조들은 이렇듯 청렴한 생활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며 살았는데 요즘 우리들은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목민관의 참뜻은 두고두고 빛바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안주희 / 국립임실호국원 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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