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나, 일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 김형준
  • 승인 2019.09.24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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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개 의사로서 감당할 수 없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한 의사에게 공개된 자리에서 한 발언이라고 한다. 지난 5월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경기도 오산시)이 최근 오산시의 정신건강의학과 병상이 포함된 병원급 의료기관의 개설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의 공청회에서 한 말이다. 그 병원은 적법한 과정을 통해 병원 개설 허가를 받고 개인 스스로(나랏돈이 아닌!) 많은 자금을 투자하여 병원을 개원했지만 결국, 지역 주민의 반대와 안민석 의원의 개입으로 복지부와 오산시의 직권 결정에 따라 병원을 폐쇄하게 되었다고 한다. 안민석 의원은 “상황을 복지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복지부 장관 역시 여러분(주민)들과 마음이 똑같다. 이것을 취소시켜야 한다. 만약 취소를 시켰는데도 병원장이 소송하게 되면, 특별감사를 실시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 오늘 그런 취지를 담은 복지부 공문이 왔다”면서 “그 공문을 보시고 시장님 직권으로 병원허가 취소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후 ‘막말’성 발언이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우려한다. 소송 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냐? 그러면 그 병원장은 일개 의사로서 한 개인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일개 의사 한 명이 감당하지 못한다. (중략) 그 원장은 삼대에 걸쳐서 자기 재산 다 털어놔야 한다. 소송하라고 해라. 그 대가를 치르게 해드리겠다”는 발언을 했다.

 애초에 경기도 오산시는 소아청소년과·내과·정신건강의학과·신경과 등 4개 과목 140병상(정신과 폐쇄 병상 126개, 개방 병상 14개)규모의 병원개설을 허가했다. 의료법과 2017년 개정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 시행령에 따른 적법한 허가였다. 오산시 관계자는 “당시, 정신과 병상이 있더라도 10% 이상의 개방 병상이 있을 경우 일반 병원으로 개원할 수 있다는 규정과 당시 환자 수였던 40명 기준, 의료인 1인이 확보됐다는 판단 하에 의료시설 개설을 허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주민들의 반발이 시작되었고 “의견 수렴 절차도 없이, 사실상의 정신병원인 의료시설 개설을 허가했다”며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의료시설에 반대하는 비대위도 구성했다. 주민들의 관심이 모이자, 정치권도 개입하였고 지역구 의원인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경기 오산시)은 오산시가 이미 허가한 병원의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며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나 개설 허가에 대한 시정명령을 요구했다. 주민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공권력을 동원,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병원은 개설 허가가 취소되었다. 이에 병원 측은 직업의 자유와 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의 침해, 그리고 뒤늦은 개설취소에 따른 막대한 재산상의 손실을 이유로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2년 전 정신장애를 가진 환자들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서라면 복지부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과 제대로 된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입원절차를 까다롭게 한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하였다. 문제는 법 개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치료와 관리시스템에 대한 준비도 없이 입원만 까다롭게 함으로써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일부 중증 정신장애 환자들이 준비도 없이 사회로 나와 최근에 많은 사건사고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고속도로 역주행으로 새 신부와 세 살 아이가 희생된 사고, 5명의 사망자를 낸 진주방화사건, 진료중 환자에게 살해된 故임세원교수 사건 등 최근들에 치료가 중단된 중증 조현병 환자에 의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들은 치료만 잘 받으면 일반인보다 훨씬 낮은 범죄율을 보이며 대부분 위험한 사람들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치료와 보살핌의 대상이지 결코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치료를 받기 위한 정신과 전문병원은 필수적이다. 또한 가족과 사회로부터 단절되지 않고 적절한 치료를 통해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함께 치료하는 것이 환자들의 예후에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이 올바른 치료를 받도록 애써야 할 복지부가 잘못된 편견과 혐오로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기보다 오히려 굴복하여 자신들이 만든 법에 따라 적법하게 개설 허가된 병원을 폐쇄토록 한 것은 자가당착의 모습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태도이다. 더욱이 시민들의 이해충돌이 발생했을 때 적절한 중재와 협상을 통해 상생의 대안을 제시해야 할 국회의원이 자신의 권력을 동원해 복지부를 움직이고 협박성 막말을 하는 현실에 놀라움과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과거 한센병 환자들을 섬에 가두고 인권을 유린하던 때처럼 ‘우리 동네는 안 돼’라는 집단이기심에 굴복하여 마음의 병을 앓는 정신장애 환자들을 어디 산속 깊은 곳으로 유배를 보내라는 것인가?

 이 기사를 접한 후 ‘일개’라는 말의 사전적 뜻을 찾아보니 ‘한낱 보잘 것 없는’이라고 나와 있었다. 자신이 가진 국회의원이라는 공권력(그것도 국민이 위임한)에 비해 ‘일개’ 의사라는 직업이 ‘한낱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나를 포함한 내가 보아온 많은 의사들은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담당한다는 작지만 소중한 책임감과 자부심을 지키며 의업을 실천하고 있다. 한 가지 정말 두려운 것은 그들에게 ‘일개 의사’일진데 설마 마음의 병을 앓는 수많은 정신장애 환자들도 ‘한낱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마음이다.

 김형준<의료법인 지석의료재단 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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