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마음속 분한 마음을 삭히지 못해 생기는 ‘화병’
자기 마음속 분한 마음을 삭히지 못해 생기는 ‘화병’
  • 양병웅 기자
  • 승인 2019.09.24 1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박철현

 환자분들을 치료 하다 보면 젊은 사람들은 우울이나 불안 등 자신이 힘들어 하는 증상에 대해서 명확히 말하지만 노인 환자분들의 경우 ‘속에 열이 들어 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가슴에 돌이 있다’ 등으로 증상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말씀을 많이 하시는 단어는 ‘울화’ 이다. 울화(鬱火)는 ‘마음속이 답답하여 일어나는 화’라는 뜻으로 본인의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해 일어나는 분노의 감정을 말한다. 화를 병으로 생각하기는 쉽지가 않다. 화는 너무나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화를 참았다가, 냈다가, 이 때문에 속을 끓이는 일들은 우리가 삼시세끼를 챙겨먹는 것처럼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화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화병(hwa-byung) 이 된다.

 

 ◆화병이란?

 화병(hwa?byung)이란 용어는 정신과에서 널리 사용되는 진단방법인 DSM의 문화 관련 증후군에 정식 등재 되어 국제 학회의 공인까지 받은 질병이다. 화병은 화를 참다 보니 발생된 여러 신체 증상과 함께 감정 증상이 같이 나타나는 증후군이다. 주요 신체증상으로는 가슴 답답함, 열감 ,치밀어 오름, 가슴에 돌덩이가 있는 느낌, 두통 ,두근거림, 떨림 등의 증상을 주로 보이며, 감정 증상으로는 우울, 불안, 불면, 눈물, 식욕감퇴, 과각성 등의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

 

 ◆화병의 원인은?

 화병은 ‘한(恨)’이라는 한국인의 특별한 정서와 함께 잦은 외침, 전쟁 등의 비극, 차별적인 신분제도 등의 역사적 비극이 배경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과 사회, 체면을 중시하는 분위기 때문에 화를 참거나 억압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해결되지 못한 많은 화가 쌓이게 된다. 이에 더하여 중년 여성들은 남편과의 불화(외도나 음주, 폭력), 고부갈등, 자녀문제 등이 흔한 유발요인이 된다. 즉 사회적 역사적 배경속에서 사회, 가정관계에서 비롯되는 부당함, 불공정, 분노와 관련된 감정이 해소되지 못하고 장기간 쌓이고 쌓여 화병이란 형태로 터져 나오게 된다. 화병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화병이 있다’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4.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몸이 아픈데 정신건강의학과?

  화병을 가진 환자들이 처음부터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화병에서 흔히 동반되는 신체증상들로 인해서 내과, 신경과, 한의원 등을 먼저 방문하여 치료와 검사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들이 심인성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검사상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고, 치료에도 반응이 없는 경우가 많아 ‘마음의 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게 된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화병은 다른 신경증적질환(우울장애, 불안장애, 신체장애)과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화가 나면 혈압이 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만성적으로 분노를 유발하는 상황에 빠지고, 이런 분노가 적절히 처리되지 않으면 만성고혈압이나 심장 질환에 노출되기 쉽다.

 

 ◆화병의 진단은?

 화병은 적응장애, 신체장애, 우울장애 등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때문에 우울증으로 진단되기도 한다. 화병을 진단하는 특이적이고 예민한 검사방법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스트레스가 쌓여있고, 억울하거나 분한 사건이 유발인자로 존재하며, 화를 낼만한 상황에서도 주변 사정 때문에 참아왔던 모습들이 수개월 이상이라면 화병으로 진단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화병은 화, 분노, 억울함, 열감, 한, 가슴속 덩어리가 차있는 느낌, 답답함, 두근거림, 입 마름, 한숨, 잡념 등의 증상을 고려해 진단할 것이 권고되기도 했다.

 

 ◆화병의 치료?

 약물 치료와 정신치료, 인지행동치료 등을 병행하여 치료한다. 약물 치료는 환자의 우울, 불안, 분노 등의 정서적 문제를 대상으로 항우울제, 항불안제, 기분조절제 등을 조합하여 치료하며 증상개선에 큰 효과가 있다. 정신치료는 환자의 신체증상에 가려져 해결되지 않는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게 하고, 살아온 인생에 대한 인정과 공감, 지지를 통한 핵심감정의 해소를 돕는다. 인지행동치료는 왜곡된 화에 대한 인지 부조화에 대한 교정과 적절히 분노를 표현하는 대처방법을 훈련하게 된다.

 

 신체적, 정신적 증상이 같이 나타나는 화병은 누구나 한번쯤은 걸리는 질환이라고 생각하여 소홀히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병이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증상 발생 후 빠른 시일 내에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상담 후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양병웅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