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남부 ‘아고라’(Agora)의 희망
전주 남부 ‘아고라’(Agora)의 희망
  • 이기전
  • 승인 2019.09.2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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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새벽 미술관 출근길 40분 정도의 거리를 걸어서 다니는 코스가 정해져 있다. 매곡교 다리를 항상 건너기에 중바위와 기린봉 너머로부터 먼동이 트면 다리 위로 부터 다리 밑 천변 길까지의 풍광이 볼 때마다 색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상인들과 장보러 나온 사람들로 매우 북적이다가 정해진 시간까지만 장사를 하고 모두 흩어진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평생을 노점상으로 살아온 노부부도 있고 초등학생 아이를 두었음 직한 젊은 부부도 보인다. 장터! 그야말로 어느 정도의 타고난 역마살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지각색의 사연들을 겪었을 것이고 각기 다른 곳에서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여러 사람이 모여 무질서하고 불편할 만도 한데 일정한 질서가 유지되면서 자연스럽고 평온하기까지 하다.

 낮시간에 남부시장 내부 골목을 지나다 보면 조그만 공간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는 작가도 보인다. 지자체에서 배려한 공간이라고 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공예품 갤러리도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다. 2층의 청년 몰은 나름 열심히 손으로 만든 아트상품 등이 진열된 가게도 있고 60,70년대 풍의 디제이가 진행하는 방송이 시장 내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응원하고 있다. 물론 낭만적인 주점도 다양하다 누가 봐도 한번 즐길만한 분위기인데 방문객의 발길이 그리 많이 붐비지는 않는다고 한다. 여기까지 바라본 시장은 내가 어릴적 보고 느꼈던 것이나 지금의 느낌이 거의 변함이 없어 보인다. 여러 가지 상품들의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시대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도시국가의 시장이나 지금 열거한 남부시장의 분위기나 다름이 없는 시장의 형태는 인류 역사상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지속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생활문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장은 ‘아고라(Agora)라 하였다 ‘시장에 나오다’라는 뜻으로 폴리스에 형성된 광장이며 이 곳이 시민들 일상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사람이 모여들어 사람들의 광장이 되었다. 아크로폴리스는 정치, 경제와 종교의 중심이었으며 아고라는 시민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상적인 활동과 연극의무대 체육대회를 여는 운동장으로도 쓰이는 등 예술 활동을 비롯 철학·인문·사상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던 곳이었고 민회를 열어 국방과 정치문제에 대한 국가의 정책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으며 국가와 시민이 소통하였던 곳이다. 그 후 흐르는 세월 속에 이곳은 자연스럽게 상인과 시민이 만나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지금 남부시장과 시장 인근에는 전형적인 ‘아고라’의 모습을 찾아가는 듯 그림이 그려진다. 상인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사고의 변화가 감지되고 각 분야의 쟁이 들이 자리를 찾아다니며 이미 터를 잡아가고 있다. 무슨 일이든 독선은 없다. 모든 세대가 시간과 공간을 불문하고 같이 모여 토론하며 정도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고대의 ‘아고라’에서 갖춰졌던 요소가 다 모여드는 곳이 되어야 한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들이 맨 먼저 찾아가서 평소 하지 않던 상인들의 거친 손을 덥석 잡고 한 표를 호소하는 모습은 정치판으로서 ‘아고라’의 역할은 계속될 것이고 상업적인 삶의 터전으로서 ‘아고라’는 우리들의 생활에 반드시 있어야 하고 살려가야 할 곳이다.

 이기전<전주현대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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