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이승우, 스물여섯번째 이야기 ‘꽃창살로부터’
서양화가 이승우, 스물여섯번째 이야기 ‘꽃창살로부터’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9.09.2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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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작가의 스물여섯번째 이야기 \'꽃창살로부터\' 전시실 풍경

 여름의 끝자락, 서양화가 이승우를 만났던 날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는 분명히 작업실이 아닌, 병원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는데 그의 손과 팔목까지 색색의 물감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이른 아침까지도 정신없이 작업에 몰입하다 급히 작업실을 나섰을 원로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졌다. 하루 15시간 이상을 꼬박 작업실에 앉아서 미친듯이 그림을 그리던 그를 한 번쯤 마주한 사람이라면 그의 손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색의 의미를 어렴풋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터다. 그는 평생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일이 목표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을의 초입, 이승우 작가의 스물여섯번째 개인전 소식이 전해졌다. 30일까지 문화공간 기린(전주객사4길 46)의 초대로 만날 수 있는 ‘花 꽃창살로부터’이다. 시선문화센터에서의 전시가 끝나기 무섭게 열흘 만에 전혀 다른 작품으로 작품전을 펼쳐보이는 원로의 열정에 박수가 절로 난다.

매 발표 때마다 변화무쌍한 작품을 선보이는 그의 작업은 이번에도 강렬하다.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어디로 튈지 모를 구성과 색채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대작들이 전시공간을 무게감 있게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비평과 촌철살인의 평론으로 전북 미술의 허기를 달래주는 원로의 삶의 나이테를 닮은 그림들. 누구보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특별하게 나를 힘들게 하는 캔버스가 있어요. 어떤 캔버스는 나를 쉽게 받아들이는데, 어떤 캔버스는 보름 동안이나 나를 괴롭혔지요. 이제 100호짜리 캔버스를 옮겨가면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아요. 사실, 캔버스는 죄가 없지요. 내가 내 부족함을 전가시키는 말일 뿐이지….”

 한 작품 앞에 선 그가 진심을 담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를 옥죄었을 캔버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된 꽃창살에 대한 그의 집념은 현재진행형인데, 정교하고 세련된 창살의 무늬는 매 발표 때마다 완벽하게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골집에서 자주 보아오던 문짝을 캔버스에 들였다. 작업실에서 우연히 대중가수 임재범의 곡을 듣다가 갑자기 떠오른 영감에 3~4일 만에 대형 캔버스 여러개를 채우기 시작했다는 작품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발걸음이 멈춘다. 문틈 사이로 비치는 사계절의 형상은 때로는 은은하게, 때로는 따스하게, 때로는 스산하게, 때로는 고독하게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감싼다.

 시골집 담벼락에 낙서를 해놓은 것 같은 작품도 재미있다. 할아버지의 캔버스에 손주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이 더해지며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을, 진정한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꽃창살로부터, 그가 담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우리의 삶을 만드는 꿈, 자유, 좌절, 슬픔, 목적, 사랑, 그 붙잡고도 싶지만 붙잡을 수 없는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고 고민한 다음에서야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작가.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그가 남긴 철학의 무게를 가늠해보는 시간일 터다. 무엇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다 보면 꿈에서까지 만나게 되는 어떠한 추상적인 형태, 색채, 기호, 행위를 캔버스에 토해내는 순간이야말로, 그에겐 자유다.

 이승우 작가가 초대한 저 문을 열고 나서면 우린 어떠한 세상과 마주하게 될까?

 이 작가는 원광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와 원광대 대학원(서양화 전공)을 졸업했다. 서울대, 원광대, 군산대 등에서 대학강사로 30여 년 동안 활동했다. 개인전 26회와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찾아가는 미술관, 움직이는 미술관)과 한국미술세계화전(파리, 뉴욕, 시드니, 청도) 등 다수의 단체전에도 참여했다. 전북예술상(2003), 중앙일보대상전 특선(2003)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저서로 ‘미술을 찾아서’, ‘현대미술의 이해와 감상’, ‘색채학’, ‘아동미술’이 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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