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색과 다기의 조화
차의 색과 다기의 조화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19.09.2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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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60>
송·건요토호문잔(토끼의 털과 같은 문양)

 찬바람이 살살 옷깃을 스치니 차 한잔이 더욱 생각난다. 가을맞이를 하면서 복잡한 세상의 셈법은 잠시 잊고, 차를 마시기 위해 준비한다면 차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즐거움 때문에 많은 선인과 풍류객들이 차 마시는 과정에서 근심을 잊었다.

  차를 다루는 것은 일종의 조화로움이다. 차에서 느끼는 향기와 맛, 색을 감상하는 것은 고대부터 전해진다. 지금이야 다양한 종류의 차와 다기가 존재한다. 차색이 가장 잘 드러나는 유리 다관과 잔을 일반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차를 전문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차의 종류에 따라 차의 색을 즐기기 위해 다기를 구별한다.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차와 우려진 차를 담기 위한 잔이 필요하다. 잔의 모양도 중요하지만 마실 차의 종류와 빛깔에 따라 잔을 구별해야 한다. 백자 잔이 가장 차색을 잘 드러내기 때문에 차색을 품평할 때는 백자 잔을 사용하면 좋다. 잔을 색상별로 놓고 같은 종류의 차를 따라 보면 잔에 따라 풍미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잎차를 우려 마시기 전, 고형차을 가루내어 마시는 음다법(飮茶法)의 경우 차색을 보완하기 위해 잔〔碗, 완〕의 색을 선별하여 사용하였다.

  차가 단순히 약용과 식용에서 벗어나 문화적 의미를 형성하던 시기는 중국 당대(唐代, 618~907)이다. 육우(陸羽, 733~ 804)는 『다경』에서 청자다완(靑瓷茶碗)을 최상의 잔으로 보았다. 이는 당시 마셨던 병차(餠茶)의 영향이다. 제다 방법과 보관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로 차를 솥에 끓여 거품을 떠 마셨다. 차색〔茶湯色〕이 적갈색으로 변하였는데 차색을 보완할 수 있는 청자다완이 인기가 있었다. 차를 청자다완에 담아 탕색을 보완하여 차의 풍미를 살린 것이다. 청자빛 즉 신비로운 비취색의 청자다완에 담긴 탕색을 으뜸으로 여겼다. 잔을 통해 차색의 시각적 요소를 충족시켰다.

  차색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송대는 차색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된 때이다. 차를 만들고 마시는 방법이 당대에 비해 더욱 섬세해졌다. 연고차(硏膏茶)를 갈아 다완에 넣고 탕수를 부어 격불하여 흰빛의 거품을 내어 마셨기 때문이다. 차의 흰거품을 돋보이게 하기위해 검푸른색의 흑유다완(黑釉茶碗)이 인기가 있었다. 흑유다완과 어울리는 차색에 대해 “순백이 제일 좋은 색이고 다음은 청백이요, 회백을 그 다음으로 쳤으며 황백은 회백 다음이다. 잔은 큰데 차가 적으면 탕색이 드러나지 않고, 잔이 작은데 차가 많으면 다탕을 담을 수가 없다. 잔을 들면 차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가을날처럼 상큼하고 자극적이어야 한다”고 까지 기록하고 있다.

  찻잎을 채취하여 차를 만드는 과정까지 탕색을 중심으로 기준을 잡기도 하였다. “기후가 따뜻하여 차의 움이 너무 빨리 자라 따고 만드는 일이 밀려 비록 희게 될 것도 누렇게 된다. 청백색을 띠는 것은 찌고 누르는 과정에서 너무 익은 것이다. 제다 과정에서 고(膏)를 다 빼지 못하면 색이 검푸르다. 또한 불을 쪼여 말릴 때 불이 너무 강하면 색이 검붉게 되니 주의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차의 흰 거품을 음미했던 송대, 흑유다완은 넓고 둥근 입으로 거품의 풍미를 음미하도록 만들어졌다. 차의 색과 풍미를 만끽하기 위한 점다법(點茶法)은 차를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차를 달여 승부를 가리는 투차(鬪茶)로 이어진다. 투차는 달여진 차의 거품과 색·향·미를 겨루는 것이다. 부드러운 거품이 오래 지속되는 차가 좋은 차로 평가되었다.

  청화백자가 찻잔으로 널리 이용된 시기는 명·청대부터이다. 지금의 잎차를 우려마시는 방법으로 고형차를 가루내어 격불하여 마시는 송대와는 다르다. 하지만 차의 색·향·미를 조절하기위해 차와 물의 양, 다기의 색을 갖추었다. ‘물이 잘 끓었으면, 먼저 다관에 조금 따라 냉기를 없애고 물을 버린다. 그런 다음 차를 넣는다. 차의 양을 잘 맞추어야 하는데, 차의 양이 많으면 맛이 쓰고 향이 무거우며, 물이 많으면 차색이 연하고 싱겁다. 찻잎이 물에 잘 우러나면, 나누어 마신다. 너무 일찍 따르면 차의 색·향·미가 우러나지 않고, 너무 늦게 마시면 차의 향이 사라진다.’ 이 모든 과정이 쉬운 듯 하나 실상 적절함을 찾기란 어렵다. 청명한 가을날 잠시 틈을 내어 차의 색·향·미를 경험해보자.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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