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등재 정읍 무성서원
세계문화유산 등재 정읍 무성서원
  • 정읍=강민철 기자
  • 승인 2019.09.1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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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1천여년의 시간을 품은 정읍 무성서원이 9개의 서원과 같이 묶어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자리한 무성서원(사적 제166호)은 우선 우아한 건축미가 인상적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반듯한 선비의 풍모도 묻어난다.

게다가 녹음까지 어우러진 9월의 풍경은 아름답고, 분위기는 한껏 여유롭다.

출입문을 지나면 유식공간인 현가루, 학습공간인 명륜당,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이어지는데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의 짙푸른 잎들이 운치를 더해준다.

유서 깊은 문화유산의 고장 정읍의 대표적인 문화자원인 무성서원이 세계 인류가 지켜나가야 할 문화유산으로 거듭났다.

유네스코는 7월 6일(현지 시간)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WHC)는 무성서원을 포함한 9개 서원을 엮어‘한국의 서원’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서원은 무성서원 외에도 영주 소수서원,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이다.

무성서원은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에 자리한 다른 서원과 달리 마을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이중에서도 무성서원은 동네 속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어, 신분계급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학문의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하고 향촌민과 함께 하면서 지역문화를 선도하며 지식인들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거점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가장 토속적이고 자연경관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1천여 년 시간을 만나다

무성서원은 1615년 서원으로 출발했다.

태산서원으로 불리다가 숙종 22년인 1696년 사액(賜額)을 받아 무성서원으로 개칭됐다.

고종 5년(1868년) 흥선대원군의 대대적인 서원 철폐령 속에 살아남았던 전라북도 유일의 서원이다. 당시 전국적으로 47개의 서원만 남았는데 전라도에서는 무성서원과 장성 필암서원, 광주 포충사만 헐리지 않았다.

무성서원 사당 한가운데에는 고운 최치원(857년~)의 위패와 초상이 모셔져 있는데, 그는 신라 말 태산(지금의 태인, 칠보 일대)의 태수를 지냈다.

무성서원은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생사당(백성들이 감사나 수령의 선정을 찬양하기 위하여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부터 제사지내는 사당)인 태산사가 뿌리다.

고운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무성서원은 1천 여년의 시간을 품고 있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고운이 태산군의 태수로 부임한 886년경부터 계산하면 1천100여 년의 역사이다.

 대표적 인물이 조선 초의 문인 불우헌 정극인(1401~1481, 경기도 광주 출생)이다. 불우헌은 1436년 벼슬에서 물러나 처향(妻鄕)인 태인(*그의 묘소와 유적이 현재 칠보면에 소재하고 있으나, 당대의 지명은 태산(泰山)과 인의(仁義)가 합쳐진(1409년 ‘태인현’이었다)에 내려와 교육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가사문학의 효시인 ‘상춘곡’은 자연 속에 묻혀 교육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면서 자연 속에서의 삶을 노래했다.

그는 특히 성리학적 질서를 담은 지역자치 규약인 고현동향약(1475, 보물 1181호)을 통해 미풍양속을 권장하고 이웃과의 화목을 권장했다.

이러한 전통이 이어져 일제 강점기인 1906년에는 을사늑약에 항거하는 병오창의가 일어났다.

면암 최익현과 둔헌 임병찬이 주도한 이 사건은 호남 최초의 항일 의병운동으로 평가된다.

특히 전북지역 중심서원이자 정신사적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기념하는 병오창의기념비가 사원 안에 있다.

교육에서부터 개방과 소통까지...

무성서원을 찾은 이들은 폐쇄적이지 않고, 건축물이 간결하며 모든 건축물의 높이가 동일한 것에서 민(民)을 향한 따뜻한 배려심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은다.

서원 건축물들도 마을을 항해 열린 공간으로 구성돼 서원 영역 전체를 관통한다.

강당을 보면 가운데 마루 3칸이 벽체가 없이 툭 틔어있어 내삼문의 태극문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움의 담백함이라는 우리 아름다움의 건축미를 느낄 수 있는 절묘한 조형이다.

무성서원에서 공부하던 군더더기 하나 없이 반듯한 선비의 모습 그대로이다.

무성서원은 배향 인물도 많다. 고운과 불우헌, 서원 인근에서 활동하던 영천 신잠(1491~1554)과 눌암 송세림(1479~1519), 묵재 정언충(1491~1557), 성재 김약묵(1500~1558), 명천 김권(1549~1622) 모두 일곱이다.

고운의 숨결이 고스란히 품고 있는 무성서원은 정읍의 정신적, 문화사적 큰 자산이다.

이를 반영하듯 시는 진즉부터 무성서원을 중심으로 한 무성서원선비문화수련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올 가을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무성서원과 주변 지역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 생태, 예술, 유산 등 가치를 온가족이 찾아 역사를 되돌아 보는 계기를 가져보자.

정읍=강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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