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과 그 효용가치
삭발과 그 효용가치
  • 안도
  • 승인 2019.09.18 18: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삭발은 결의의 상징이다. 삭발하면 불교의 스님이 연상되듯 사실 그 기원은 종교에 있다. 삭발은 그리스인들과 셈족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에는 자른 머리카락을 신에게 바쳤다. 삭발하는 머리모양은 노예와 같은 맥락에서 신에 대한 충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초기 기독교의 수도자들에 의해 시작되고 발전한 삭발식의 전통은 이후 7세기까지 가톨릭교회에서는 일상적인 일로 행해졌다. 불교에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승려로 입문하는 의식을 치를 때 삭발을 하며, 그 후에 자격을 제대로 갖춘 승려가 될 때 다시 삭발식을 거행한다.

 삭발이 투쟁의 대상이 된 것은 아무래도 우리의 문화에 깔린 유교사상과 관련이 깊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의식처럼 듣고 자란 우리에게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는 목을 자르는 행위와 같은 결의의 상징이었다. 단적인 예로 조선 말 개화파들은 근대화와 개혁의 일환으로 단발령을 단행하자 유생들을 중심으로 극단적인 반발이 일어났다. 많은 선비들이 “손발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했고, 면암 최익현은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단발령은 의병의 봉기를 알렸고 결국 전국적인 봉기가 행해졌다. 결국 단발령을 주도한 김홍집 등은 피살되고 단발령은 결국 철회됐다.

 일부에서 삭발은 군국주의 시대 일본 군인이나 야쿠자들이 쓰는 결의의 방식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일본인들은 모든 사사로운 관계를 끊고 오직 ‘왕’과 ‘조직’에만 충성하겠다는 결의의 표현이 삭발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삭발로 결의를 표현하는 것보다는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 결의가 더 일반적이었다. 실제로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러 떠나기 전에 삭발하지 않고 손가락을 잘라 결의를 다졌다.

 삭발은 문학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자른 머리카락을 팔아서 급전을 마련하는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에서는 주인공 델라가 남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 주려고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작은 아씨들에서는 주인공 조의 아버지가 외지에서 병으로 쓰러져 어머니가 급히 찾아가야 하는데 여비가 없어서 조가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여비를 마련했다.

 이러한 삭발은 의례적인 관습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갖기 쉬운 쓸데없는 욕망과 교만을 버리고 유혹에 빠지지 않으며 또한 수행하는데 번거로움을 덜어 한마음으로 정진하기 위한 것이며 자신이 깎는 머리를 만지고 보며 스스로를 반성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형식적인 삭발보다는 마음의 순수성이 더 중요하다는 뜻에서 마음속의 삭발이 중요하다.

 그런데 얼마 전 여성 의원 두 명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항의하며 삭발을 했다. “국민들이 지금 잠을 못 이루는데 모두 삭발합시다!”라고 외치며 지지자들의 방송 영상이 공개됐다. 이를 본 어떤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 북에 “비록 정치적 행동이라 할지라도, 한 여성 정치인들로 하여금 삭발저항을 하도록 만든 독선과 오기와 비이성(理性) 몰상식의 광기(狂氣)정치는 반드시 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에는 국회 앞에서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법안 패스트트랙 지정의 부당성을 알리는 4명의 국회의원이 삭발했다. 그러나 삭발은 저항을 표현하는 ‘정치적 행동’이지만, 삭발을 둘러싼 정치권 분위기는 엇갈린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삭발”이라고 독려하는 반면, 또 어떤 의원은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는 의원직 사퇴, 삭발, 단식”이라며 “머리는 자라고, 굶어 죽은 의원 없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또한 오죽 답답하면 삭발을 하겠느냐면서 정부가 귀를 막고 있는 정국에서 삭발이 큰 효용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엊그제는 야당대표가 삭발했다. 그런데 역시 삭발의 원인 제공자는 일종의 ‘쇼’로 치부하며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삭발은 전통적으로 노동계가 투쟁 의지를 다지며 치러져 왔으며 정치권에서는 야당이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단식, 장외투쟁과 함께 여론을 환기하고 지지층을 결집함으로써 여당에 맞서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었다.

 삭발은 무엇보다 여론의 관심을 호소하고 투쟁의 절박함을 국민에게 알리려는 차원이 크기 때문에 노동계를 비롯해 시민단체, 지역대표나 이익단체 등에선 삭발 시위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삭발의 충정에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통하는 사회는 언제나 올까?

  안도<문학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