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 예술로 어두운 골목을 바꿔가는 서점, 물결서사
[동네서점] 예술로 어두운 골목을 바꿔가는 서점, 물결서사
  • 이휘빈 기자
  • 승인 2019.09.16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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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촌 골목 한가운데 자리잡은 서점 '물결서사' 전경.

한낮의 발길 드문 선미촌 거리를 걸었다.

올해 1월 이 골목 한가운데 자리 잡은 예술가 서점 ‘물결서사’로 가기 위해서다. 물결서사는 전주에 뿌리를 둔 7명의 예술가 ‘물왕멀팀’이 공동 운영하는 동네 작은 서점이다. 물왕멀팀은 고형숙(한국화가), 김성혁(성악가), 민경박(영상작가), 서완호·최은우(서양화가), 임주아(시인), 장근범(사진가) 작가로 구성돼있다.

성매매 집결지라는 거리감과 거부감을 무릅쓰고 골목 깊숙한 곳까지 물어물어 찾아 들어오는 손님들 마음 한 곳에는 서점을 운영하는 예술가들과 선미촌의 변화되는 모습을 응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그들은 느낀다.

“우연히 지나가면서 들르는 곳이 아니라 마음먹고 찾아와야 하는 곳이라 손님 한 분 한 분의 방문이 반갑고 감사하죠.”

대구에서 SNS를 보고 찾아왔다는 커플 손님들이 물결서사에서 산 책을 들고 환하게 웃어보이고 있다.

물결서사는 지난 8월 15일 저녁 박준 시인 낭독회를 열기 전 손님들에게 개별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오는 길에 붉은 빛이 보이더라도 걸음을 주저하지 마세요. 예술가들의 작은 용기로부터 시작된 물결서사의 마음이 여러분에게 닿길 바랍니다’

해질 때쯤이면 하나 둘 불을 켜는 성매매업소 모습에 놀라 돌아서지 말고, 있는 그대로 선미촌을 바라보며 서점까지 무사히 도착해달란 의미였다.

물왕멀팀은 “전주에 살면서 한 번도 선미촌 근처에 오지 못했다는 20대 젊은 손님들이 저 멀리서부터 성큼성큼 다가와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알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한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닫힌 마음을 여는 일’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물결서사가 그 마음을 여는 일에 작은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품은 용기와 실험은 다양한 활동으로 펼쳐졌다. 올해 3월부터 페이스북 페이지와 인스타그램 등 SNS 채널을 통해 시·사진·그림·영상 등 꾸준히 개인 창작물을 발표해왔다. “발표지면이 없으면 우리가 직접 만든다”는 발상으로 시작된 이 연재는 8월까지 이어져 총 112개에 달하는 콘텐츠가 게재됐다. 이들은 당초 물결서사 매거진을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생각했으며 연말에 크라운드 펀딩을 받아 본격적으로 출간물 발간에 나설 계획이다.

지난 8월 15일 '박준이 사랑하는 박준 시 10편'을 주제로 열린 물결서사 낭독회에서 박 시인이 시를 읽고 있다.

젊은 예술가들의 무대도 마련됐다. 지난 6월 물왕멀 주민 조현상 성악가의 데뷔콘서트, 광주 미술작가와 ‘지역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을 주제로 연 교류워크숍, 전주시 문화적재생사업단 인디와 함께 8월 14일부터 20일까지 진행한 ‘물결휴가예술주간인디’와 서노송동 야시장 등으로 선미촌의 모습을 새롭게 바꿔놓고 있다.

서점으로 물결서사는 어떤 곳일까. 현재 물결서사는 세 곳의 책공간을 두고 있다. 첫 번째는 정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띄는 문학·음악·영화·사진·그림책들. 작가들이 직접 선별한 책들이다. 테이블이 있는 곳에도 예술품과 함께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물왕멀팀은 두 달에 한 번씩 주제를 정해 큐레이션을 꾸민다. 안쪽에는 기증받은 책들로 이뤄진 ‘공유서점’이 있다. 1000~4000원의 싼값에 책을 살 수 있고, 동네 주민은 맘껏 빌려 갈 수 있다.

판매하는 서적뿐만 아니라 공유서점 역시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물왕멀팀은 “먼 동네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책을 기증하는 아주머니가 있는가 하면, 친구들과 돌려 읽기 위해 책을 고르는 주민 할아버지 등 단골손님이 늘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책을 많이 팔아서 책을 많이 들여놓고 더 폭넓은 목록을 선보이고 싶다”는 소망과 “헌책이 있는 공유책방에도 큐레이션을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책방에 오는 주민들과 시민들의 말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왕멀에서 서노송동으로, 선미촌으로 불린 이곳을 보고 걸으며 그 순간의 소중함들을 기록한다는 것.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는 ”앞으로 주민들과 시민들이 즐겁게 찾아올 수 있는 문화공간과 예술가들이 오래 상주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이 생겨 선미촌이 서노송예술촌으로 무사히 안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골목의 끝에서 물결서사는 반짝이고 있었다. 이 골목으로 책을 읽으러 오는 사람들의 걸음을 생각했다.

 

물결서사

 <주소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물왕멀 2길 9-6 영업시간 : 매일 오전 11시~오후 6시, 수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mull296>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책

 <자영업자/출판사 사월의 눈/작가 김지연>

 서학동사진관을 운영하는 김지연 사진가님은 2000년대 초반부터 ‘정미소’(2002), ‘나는 이발소에 간다’(2004), ‘근대화 상회‘(2010), ‘낡은 방’(2012) 및 ‘삼천원의 식사’(2014) 등으로 지역 문화 및 소시민들의 삶을 기록하셨어요. 2016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전주와 서울, 광주의 자영업자들을 만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중식당 주인, 자전적 책을 쓰고 싶어하시는 수선집 어르신, 꽃이 좋아 꽃가게 운영이 행복하다는 꽃집주인 등 다양한 자영업자들이 가진 특수성과 보편성이 눈에 띱니다. 자영업자들의 일상 속에서 특별함이 담겨있는 이번 책을 소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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