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석문 통해 선현의 지혜와 역사, 문화를 함께 느낀다
금석문 통해 선현의 지혜와 역사, 문화를 함께 느낀다
  • 이휘빈 기자
  • 승인 2019.09.09 1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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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혼 名人名家를 찾아서> 전라금석문연구회장 김진돈 명인
전라금석문연구회 김진돈 회장(60)이 손수 탁본을 펼쳐 당시 정읍서 병오년 의병을 일으킬 병오창의(丙午倡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광복 기자
전라금석문연구회 김진돈 회장(60)이 손수 탁본을 펼쳐 당시 정읍서 병오년 의병을 일으킬 병오창의(丙午倡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광복 기자

옛 선현들의 의지가 담긴 금속과 돌, ‘금석문(金石文)’은 그 단단한 소재들에 새겨진 문자를 뜻한다. 비문, 묘지명, 토기와. 기와, 오래된 건물의 편액과 주련에 새겨졌거나 쓰인 글씨를 분석하는 일을 ‘금석학(金石學)’이라고 한다.

“금석학은 단순히 탁본을 뜨는 것이 아닙니다. 글자 속에서 집안, 문집, 뜻, 시대상황을 함께 연구하는 일입니다”

전라금석문연구회 김진돈 회장(56)의 말은 단단한 울림이 있었다. 김 회장은 24여 년 동안 꾸준히 금석문을 찾아내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문화, 사연들을 연구하고 있다.

김 회장의 유년기는 조선말의 의기(義氣)로부터 시작됐다. 고조부 김영상은 전북 정읍 칠보에서 면암 최익현, 돈헌 임병창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이어 1910년 일제에 붙잡혀 군산 감옥에서 단식 끝에 숨을 거뒀다. 일본 경찰에 의해 호송중 만경강에 몸을 던졌단 일화는 조선 말 채용신 화가가 그린 ‘투수도(投水圖)’에 남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의 마수를 피해 후손들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순창군 쌍치면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살았다.

유년시절 김 회장은 가족들과 전국 각지를 연고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생활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어릴 적 집안에서 한학과 서예를 배워 전주에서 아산 송하영과 강암 송성용에게 서예를 익힌 그는 전북미술대전 서예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서예가였다. 그러나 한문과 서예를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어 뒤늦게 검정고시에 힘을 쏟았다. 1990년 서른이 넘은 나이에 원광대 서예학과에 입학, 이어 전북대학교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서예에 대해 공부하다가 금석문에 대해 깊게 관심을 쏟은 김 회장은 2001년 전라금석문연구회를 결성했다. 연구회는 전국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사라져가거나 닳아가는 금석문을 찾아내 문화재적 가치를 발굴해 그 이야기들을 소개했다. 이들은 2004년 완주군 봉동에서 조선 후기 최고의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가 앞면을 쓰고, 창암 이삼만이 뒷면을 쓴 ‘김양성 비문’을 찾아내는 쾌거를 거두고, 2005년에는 순창 조원길 묘지에서 디딤돌로 사용되던 비석을 발굴, 글자 24자를 탁본을 통해 찾아내 도 지정유형문화재로 등재키는 등 혁혁한 발견을 이뤄냈다.

이어 회원들의 현장답사와 연구 결과는 2003년부터 20여 차례에 걸쳐 ‘전라금석문연구’라는 회보로 출간됐다. 2007년부터 5년 동안 전북도의 지원을 받아 전북권 중요 금석문 500여 개를 탁본하고 해설한 ‘전북금석문대계’(전 5권)도 출간했다.

김 회장은 탁본을 펼쳐 조선말 정읍서 병오년 의병을 일으킨 병오창의(丙午倡義)를 소개했다. 당시 임병창 장군과 최익현 선생이 어떤 뜻으로 글을 남겼고, 나라가 주권을 잃고 일본의 야욕이 조선을 향할 때 의기(義氣)를 떨친 선조들의 기개와, 그 기개의 근원을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이 남긴 흔적에서 소재를 짚었다. 최치원이 남긴 글이 사람들을 교화하고, 유교의 가치가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져, 어떻게 살아야 부끄럽지 않고 옳은 길로 나아가는지 지금까지 전달했다는 것.

“선비정신과 전통문화, 서예의 혼과 동학농민혁명의 뜻 등이 한껏 담겨 있는 전북은 다양한 문화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통을 다시 연구하고 찾아 현실에 옮겨 심는 과정에서 미래를 맞는 새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현대에 약해져가는 우리 젊은이들의 역사관에 자부심을 불어넣고 선조들의 나라사랑을 알리고 싶습니다.”

이어 김 회장은 현재 금석문연구회의 회원과 지원이 줄어드는 데 안타까움을 느끼며, 많은 사람들이 금석문과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을 쏟아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김진돈 회장은 2003년 완주문화원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 전주문화원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김제시·완주군·임실군·순창군 향토문화유산 심의의원, 전주시·동학농민기념재단 유물구입 심사위원, 전주시 슬로시티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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