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위선에 대하여
조국의 위선에 대하여
  • 최정호
  • 승인 2019.09.09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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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위선자를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을 선한 인간으로 속였기 때문이다. 그가 옳은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을 포장했기 때문에 혐오한다.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어떤 행동을 비난하는 것과 자신이 그 나쁜 행동을 하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위선에 분노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원칙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러한 원칙을 주장함으로써 자신이 도덕적인 사람인 척 위장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국은 위선자다. 사람들은 위선자를 비난하지만 어떤 선행이나 자선을 베푸는 이유로 ‘자신이 정의롭고 자비로운 존재라는 평판을 얻고 싶어한다’는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람은 드물다. 자선과 선행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투자의 일종이 아니겠는가? 선행에 대한 ‘감사’는 그에 대한 ‘은혜’의 가치를 반영한다. 즉 감사는 일종의 차용증으로 사람들의 ‘평판’에 베푼 사람의 명예가 기록되는 것이다.

 조국은 자신의 명예로운 ‘평판’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지만 자신의 위선을 은폐하는 데 실패하여 곤욕을 치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실 착하게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착하게 보이고 싶을 뿐이라고 말하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왜곡일까? 그렇다면 조국의 위선은 그가 쌓은 ‘평판’을 무너뜨릴 만큼 중대하고 혐오스러운 것일까? 조국의 이타주의적 속성에 속임수가 있었다는 것으로 그가 야비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타주의는 이기주의를 실현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타주의적 봉사나 기부행위의 최종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만약에 이타주의의 불완전성을 비난하고자 한다면 모든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승인이 거부되어야 한다. 재산의 증여나 상속도 금지되어야 한다.

 이타적 행위에 대한 칭찬에서 권유, 당위로 논리를 전개하면 재산과 지위에 대한 불평등은 정당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직계 존비속에 대한 편애를 인정하는 정체는 인간의 이기심을 폭넓게 인정하고, 위법에 한해서 그것도 들켰을 때만 징죄를 실행한다. 그러므로 압수수색이나 기소는 그것 자체가 국가권력의 폭력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죄를 은폐하고 사는 존재이므로 위선의 보호막은 개인의 권리이다. 그 폭력은 국가에게 위임된 독점적 권력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검찰에게 위임되었다.

 이번 사건은 수사남용의 그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관련된 아니 처와 자식까지 관련된 모든 것을 수색한다면 ‘죄’가 은폐될 수 있을까?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관점’이 바뀌면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된다는 것을 목격한다. 즉 조국의 위선을 바라보는 시선 혹은 관점에 따라 사람들의 의견이 상반됨을 우리는 지난 한 달간 지켜보지 않았는가?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도덕적인 명제는 없고 ‘명제에 대한 도덕적인 해석만 있다’고 했다.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없는 명제는 다양한 해석만이 있기 때문에 명제로서 다룰 사항이 아니라는 뜻이다.

 조국이 받는 ‘혐의’는 ‘위선’에 대한 것이지 ‘위법’에 관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조국은 위선의 끝판 왕이고 금수저의 전형으로 간주하였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겐 조국의 위선은 정당할 뿐 아니라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정치의 문법은 과학이나 문학, 철학의 문법과 결이 다르다. 정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밀접하게 상호연결되어 운행되는 버스와 같아서 운전대를 잡은 인사권자도 좌석에서 들려오는 거친 항의를 무시할 수 없고 목적지도 마음대로 정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버스의 운행은 운전사보다는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즉 국민의 수준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글을 탈고하기 직전에 장관 임명 소식을 듣게 되었다.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했다고 해도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이고, 청와대는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조국 내전을 지켜본 국민들은 이미 둘로 나누어져 있고,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는 위선이라는 <도덕 명제>에 대한 해석을 양측은 바꾸지 않는다. 모든 것이 폭로되었던 장관 지명을 수락한 후보자에게 명예로운 후퇴의 호기는 지나갔고 또 다른 ‘루비콘 강’ 앞에서 대통령은 외로운 결단을 해야 했다. 권력의 무게만큼 시련은 가혹하다. 조국 임명은 사법개혁의 시금석이 될 것이고 위험을 무릅쓴 대통령의 결기는 조국이 감내한 혹독한 시련에 대한 용기 있는 응답이다. 대한민국의 민 낯이 드러난 조국 사건은 <도덕>과 <법>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한다.

 최정호<대자인병원 성형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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