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크는 아이들
마을에서 크는 아이들
  • 진영란
  • 승인 2019.09.05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너희들 어디서 왔니?”

 “아이고, 애들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이쁜데 그렇게 멋진 옷을 입고 왔네!”

 “저희가 오늘 길놀이 하러 왔어요!”

 4학년 아이들이 빨강, 파랑, 노랑 삼색 띠를 매고 축제 마당에 등장하자 여기저기서 어른들의 찬사가 쏟아진다. “선생님! 더워요. 이걸 왜 해야 해요?”라고 투정을 부리던 아이들이 어른들의 칭찬세례에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늠름해진다. 진안군청 앞마당에서 펼쳐진 진안군 마을축제 ‘축제랑 만나장’에서 우리 아이들이 증평굿으로 길놀이를 하기 위해 등장하는 풍경이다. 14명의 아이들의 등장만으로도 고요했던 축제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올해부터 장승학교는 진안지역 증평굿 보존회에서 지원하는 농악 전수 학교가 되었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학생들이 2주에 한 번씩 전수를 받고 있는데 증평굿 가락을 익혀서 학교 단오행사 때 어설프게 길놀이를 했었다. 그 모습을 본 마을축제 사무국장님께서 이번 마을축제 때 아이들이 길놀이를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 오셨다. 처음에는 악기를 매는 데에만 한 시간 넘게 걸렸다. ‘과연 축제를 여는 길놀이를 할 수 있을까?’ 자꾸 의구심이 들었지만, 초조한 어른과는 달리 아이들은 평소처럼 장난치고 놀면서 태평하게 가락을 연주했다.

 “깽깽깽 무릎 깽깽 깽 무릎 깽 무릎 깽깽”

 어설프지만 흥에 겨운 꽹과리가 세 박자 가락을 연주하면

 “덩덩덩 쿵 따 쿵 쿵 따따따 쿵 따쿵”

 장구가 소리를 얹고

 “징~”

 묵직한 징소리가 무게를 더한다. “쿵, 쿵 쿵”울리는 북소리는 왠지 가슴까지 뛰게 만든다. 그렇게 원을 그리며, 한참을 놀고 나면 어느새 이마에 땀이 맺힌다. 서로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이 달처럼 환하다.

하얀 한복을 입고, 그 위에 삼색 띠를 매고, 꽃 두건을 쓰니까 정말 공연을 한다는 것이 실감이 났는지 아이들 표정이 사뭇 진지하고 경직되기까지 한다. 그런데 축제 마당에 등장하는 순간 어른들이 보여주신 멋진 환대가 아이들 마음을 스르르 녹였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전수를 해 주신 보존회 선생님께서 상쇠를 맡고 꼬마 상쇠들이 뒤를 따랐다. 그 뒤를 이어 장구, 북을 든 꽃 같은 아이들이 춤추듯 원을 그리고, 보존회 선생님들 몇 분이 합류하셨다. 아이들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축제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원을 그렸다가 풀면서 대형이 바뀌고, 가락이 전환될 때마다 아이들 발걸음이 빨라지고 표정도 상기되었다. 아이들의 증평굿 길놀이를 지켜보는 진안의 어른들은 무엇에 홀린 듯도 하고, 뜨거운 불덩이를 하나씩 가슴에 품은 듯한 표정이었다.

아이들도 어른들의 뜨거운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고는 무척이나 감동을 했다.

 “우리 아이들 정말 예쁘고 대견하네요! 4학년이 이렇게 해 낼 수 있다니, 놀라워요!” 공연을 함께 지켜보신 학부모님 얼굴이 더 상기되어 있다.

  어른들은 왜 이렇게 환호했을까? 바로 길굿을 펼친 사람들이 ‘아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우리 마을 아이들’말이다. ‘우리 마을 축제 마당’에서 ‘우리 아이들’이 펼치는 길놀이만큼 신명나는 놀이판이 있을까? 우리 마을 어른들 앞에서는 실수도 괜찮고, 오버도 괜찮다. 뭐든 해도 괜찮은 ‘안전한 놀이판’이 우리 마을 말고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