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 국치일을 보내고-합리적, 이성적 판단?
경술 국치일을 보내고-합리적, 이성적 판단?
  • 황진
  • 승인 2019.09.04 1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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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 8월 29일, 우리는 국권을 일제에 강제로 빼앗겼다.

 형식적으로는 합법적인 한일합병 조약체결의 결과였다. 총리대신 이완용 같은 부역자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부역자들의 한결같은 행위근거는 합리성이었다. 나름대로 개혁가였던 이완용이나 석학 최남선, 이광수 같은 사람들의 변절요인도 이성적 합리성이었다. 그들의 이성으로는 일제가 망할 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고, 후에 그렇게 고백하였다.

 위대한 역사철학자 헤겔은 세계역사란 이성이 본질인 절대정신의 자기실현으로 정·반·합의 변증법적 방식으로 인간 개개인의 자유가 증진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퇴보해 보이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것은 이성의 간계, 즉 이성의 일시적 속임수라는 것이다. 역사는 길게 보면 퇴보하지 않고 계속 발전해 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긴 인류역사 속에서 짧은 삶을 사는 한 개인이 갖는 이성적 합리성의 한계를 설명해준다. 인간 이성논리가 갖는 함정이다.

 우리는 지극히 저급한 사적 이해관계만으로는 설명되기 매우 어려운 과거 이광수나 최남선 같은 지식인들의 변절로부터 깨달아야 한다. 그들은 탁월한 지식인이었음에도 그들의 합리적 생각으로는 일제가 너무 강했고 무궁할 줄로 알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미국과 중국은 너무 강해 보이고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최근의 한일분쟁으로 서서히 드러나는 격랑의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서 오직 이성적 합리성에만 우리의 판단근거를 전적으로 삼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역사학자라는 이름으로, 합리적 증거와 이성적 판단에 의한 ‘반일 종족주의’라는 이론으로 우리 역사를 왜곡된 사관으로 폄하하는 책이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물론 책을 사보는 이유는 내용을 비평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라 한다.

 한국인의 정신문화는 크게 말해 샤머니즘에 긴박되어 있다고 전제하고 한국의 민족주의를 종족주의로 고쳐 부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반일 종족주의에 편승하여 한국의 역사학계는 수많은 거짓말을 지어냈다고 강변한다. 심지어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대법관들이 해방 전의 한일 간 노동이동의 실태 및 이승만 정부 이래의 한일 청구권 회담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식민지 지배의 피해를 배상하라고 명령한, 수습 불가능한 대형 사고라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프롤로그 및 10장).

 이 책의 저자들이 어느 정도로 명석하고 한국 경제사에 해박한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제 치하의 압제를 받은 증인들이 생존하고, 역시 학자적 양심을 가진 수많은 정통의 역사학자들의 정설을 뒤집고 다소 감정적으로 보이는 문체의 내용들을 주장하는지, 심각한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군산시 장미동(藏米洞), 미원동(米原洞), 미장동(米場洞)이라는 이름. 쌀을 쌓아두던 동네·생산하는 벌판이라는 뜻과 쌀 산출의 장소라는 뜻의 이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탄다. 이 부근은 1899년 군산항 개항 이후 일본인 거주지역이 되어 지금도 70~100년 된 일본식 가옥이 남아 있고 군산세관, 국립군산검역소, 전주출입국관리소 군산출장소 등이 지어졌는데 이런 건물들이 조선 사람들을 위해서 지어졌겠느냐 말이다.

 옥구군에 거주하신 어르신의 경험담이 뇌리에 스친다. 일정시대 공출과 노무자 차출에 얼마나 힘이 들던지, 굶어가며라도 자식은 가르치며 살아왔노라는. 예나 지금이나 민초들이 더욱 모진 역사를 살아왔던 것이다.

 비록 비합리적이고 무모해 보일지라도 당위, 즉 당연히 그래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이 당연히 유익하고 옳다. 한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의 오천년 역사가 이 ‘옳음’을 증거 한다. 잔학한 일제로부터의 독립이나 오늘날 우리 사회의 눈부신 민주화의 결과도 위대한 선각자들이 피땀으로 노력한 것과, 전혀 이해되지 않고 무모해 보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의 열매가 아닌가?

 이것은 오늘 일본의 경제 침략의 와중에서 맞는 경술국치가 자강능력을 함양해야 하는 당위성과 함께 우리에게 보여주는 절실한 교훈이다.

 황진<더불어민주당 군산혁신성장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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