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청아한 금강초롱꽃의 아픈 사연
아름답고 청아한 금강초롱꽃의 아픈 사연
  • 소재현
  • 승인 2019.09.0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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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수목원 [식물별곡] <7>

  지금쯤 금강산이나 설악산 그늘 아래서 아침이슬을 함초롬히 머금은 금강초롱꽃이 밝게 피어 있을 텐데, 은은한 자주색이나 짙은 자주색 꽃은 보는 이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을 만큼 아름답다.

  밤에 불을 밝히는 초롱을 닮은 꽃이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금강”이라는 지역이름의 접두어를 앞에 붙여 “금강초롱꽃”이라 한다.

  꽃을 한번 보면 그 고운 이름이 아주 딱 어울리지만, 이토록 아름답고 고운 이름에 세계적으로 쓰는 학명은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그대로 배어 있다.

  이 식물을 발견해서 처음 학계에 알린 사람이 나카이(Nakai)라고 하는 일본인 식물학자였는데, 나카이는 1913년 한국에 들어온 후 한반도의 식물을 모두 조사하고 채집하였다.

  이유는 식물상 조사연구 보다 한반도 식물자원의 수탈이 목적이라는 것이 후학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의 원인이된 을사늑약의 주역인 조선총독부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가 나카이의 연구비와 인력을 지원해준 사람이라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나카이는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된 금강초롱꽃을 하나부사와 자신의 이름을 붙여 “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 나카이(Hanabusaya asiatia Nakai)”라는 이름의 학명을 등록해 올렸다. 이에 따라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금강초롱꽃을 하나부사라는 이름의 화방초(花房草)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1속 1종 만 존재하고 한반도 이외에서는 자라지 않는 희귀하고 아름다운 한국특산 식물이 식민지배의 제물이된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통탄할 노릇이다.

  북한에서는 부끄러운 학명은 쓸 수 없다고 금강산이야(Kumgangsania)라는 다른 이름을 붙였다는데, 학명은 국제식물명명규약에 의해 세계 각국이 함께 쓰는 것이니 한번 등록되면 싫고 부끄럽다 해서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금강초롱꽃에 얽힌 아픈 사연은 또 하나 있다. 금강초롱꽃은 금강산과 설악산 등 자생지가 아니면 지속가능하게 꽃을 피우지 못한다. 그런데 설악산과 점봉산의 금강초롱꽃 상당수가 사라져 가고 있다. 초창기에는 아름다움에 반해 몰래 훔쳐갔고, 야생화 붐이 일면서 부터는 극성 마니아들에 의해 자생지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

  이에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에서는 유전자원을 보전하기 위해 대나무원을 조성해 여름의 땡볕을 대숲이 차단하여 알파인식물인 금강초롱꽃이 자랄 수 있는 서식환경을 만드는 등 지속가능하게 꽃을 피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결과 더위에 잘 견디며 생존을 하고는 있지만 꽃의 생명력이 자생지만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금강초롱꽃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서는 자생지에서 무분별하게 채집하거나 등산객과 대규모 사진촬영단의 발자욱 아래로 사라지지 않도록 잘 보전해서 후손들에게 더 이상 아픈 상처를 남겨주지 말아야 할 일이다.

 

 <한국도로공사 전북본부 소재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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