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기다리며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기다리며
  • 채수찬
  • 승인 2019.09.02 1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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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게 도널드 트럼프로부터 시작되었다. 국내정치든 국제정치든 정치에서 그동안 지켜오던 규범이 더 이상 지켜지지 않고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엉뚱한 행위들이 판을 치게 된 게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미중분쟁도 한일분쟁도 서로 치고받는 강도와 거기에 사용하는 수단이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수준이다. 국가 지도자들이 더 이상 국제 문제에서 정의와 공평을 얘기하지 않고 자국의 적나라한 이익만을 얘기한다. 국내적으로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만을 노골적으로 얘기하고 여기에 방해되는 사람들은 모두 적으로 몰아붙인다. 정치인들은 이제 존경받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여론조사에서 올라가는 것만이 목표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이런 말을 했다. 정치가든 영웅이든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행동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전에 언젠가 어느 사상가가 만든 아이디어들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가 정치에 나갈 기회가 있었을 때 사양한 것은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사상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천이라 봤다. 그가 한 말은 맞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사상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나온다. 세상이 변하면 문제도 변한다. 다시 말해서 사상은 변화하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한 사상도 변하지 않는 사상체계도 없다.

 케인즈는 공산주의를 무용지물로 보았다. 칼 맑스의 이론들이 오류투성이라고 보았다. 실제로 공산주의의 실험은 케인즈가 죽은 뒤 반세기 뒤에 실패로 판정났다. 아직도 중국과 북한 같은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이 있긴 하나 실제로 공산주의를 실행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면 왜 공산주의는 한 세기 동안 세계를 휩쓸었는가. 세상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고, 맞든 틀리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문제점 중에서 특히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공산주의의 대안은 자본재의 공유화와 노동계급의 독재였다. 케인즈는 자본주의의 문제점 중에서 특히 대량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자유방임 시장경제 체제의 약점을 분석하고 재정지출을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여 경기 변동에 대응할 것을 제안하였다.

 도널드 트럼프가 나타난 것은 시대의 산물이다. 기존의 질서가 변화된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존과 다른 접근의 깃발을 든 사람에게 정치적 지지가 몰린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든 아베 신조든 문재인이든 꿩 잡는 게 매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들 모두 다 통상적이지 않은 정책들을 내놓고 있는데, 문제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잘한다고 박수를 쳐줘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접근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다.

 트럼프는 전략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면서 중국의 불공정한 경제활동 관행에 제동을 거는 등 나름대로 미국에 유리한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편에게 손해가 되는 방향이기 때문에 보복을 불러 일으켜서 결국은 미국도 손해보게 되는 어리석은 일들을 하고 있다. 아베도 한국을 자국의 전략적 목적 달성을 위해 이용하면서 반도체 핵심부품 수출규제 등으로 트럼프가 보인 행태를 따라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입장이라서, 한국정부는 자국에 유리한 정책을 추구하기보다 상대방에 불리한 정책을 추구하며 ‘너죽고 나죽자’ 식으로 나가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미국에 대항하는 중국의 입장에도 동정이 간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세계사의 저물녘에 나래를 편다고 하였든가. 혼돈의 시대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갈 해법들이 나타나길 고대한다.

 채수찬<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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