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약속
가을의 약속
  • 박인선
  • 승인 2019.09.01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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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억作 Overlap(서울예술의 전당 2019 한가람미술관 채수억 작품전 출품작)

 매주 토요일은 도시농부가 되는 날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으니 농사일은 잘 아는 것 같았지만, 어설픈 농부 흉내는 몇 번의 실패로 들통이 나고 말았다. 손바닥만 한 텃밭농사도 때를 잘 선택해야 하고 시비관리도 제대로 해야 밥상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 보니 절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를 터득해온 조상들의 지혜가 새삼스럽게 높아만 보인다.

 봄에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시골집을 정리도 하고 가꾸었다. 하찮은 소일거리라고 생각했던 텃밭농사를 쉽게 생각하면서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자연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정조 임금에게 이르기를 농사를 관장하는 책임자는 반드시 농사를 지어본 사람을 중용하라는 말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경험은 최고의 스승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어디 쉬운 게 하나라도 있을까. 경험 부족에 그 흔한 인터넷 정보도 지나쳤다. 잡초를 막는다면서 비닐멀칭 작업은 작물의 뿌리를 뜨겁게 달구어 고온으로 말라 죽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은 식물들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거듭된 실패 후에 얻은 과실은 밥상머리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한 주일의 주말은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도시농부가 되어보니 먹는 문제도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처서가 되니 불볕더위는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다시 한 주의 시작은 고물상의 작업장에서 시작한다. 농부의 마음과 작가의 마음이 다를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폐기물 더미를 살핀다. 10월에 예정되어 있는 삼례문화예술촌 모모 미술관 정크아트 전시회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농사하기 좋은 날씨처럼 작업하기에도 날씨는 그만이다. 목표가 있으니, 이것만큼 즐거움이 있겠는가.

가을은 문화예술행사가 풍성한 절기이다. 지난주에는 전북 예술회관에서 지역 미술인들의 전시행사인 ‘전북 나우 아트페스티벌’이 성황리에 열렸다. 모처럼의 작품 전시를 통해 작가들도 만나고 소소한 이야기들도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정말 힘들어요. 올해는 작품 하나도 못 팔았어요. 해가 갈수록 더 힘든 것 같아요” 속마음을 털어놓는 작가를 통해 삶의 치열함도 엿보았다.

 직업을 가지고 겸업을 하는 작가의 속내가 이럴진대, 전업 작가들의 사정은 어떨까. 천신만고의 노력으로 생활은 유지된다고 하지만 얼마 전에 발생한 예술작가부부의 사망은 작가적 삶의 허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고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작가들의 삶도 우리 사회가 챙겨야 할 몫이다. 척박한 토양에서 질 좋은 예술을 기대하기란 천수답에서 풍년을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작가들의 배려가 아쉽다.

 어찌 되었건, 세상일들은 요란스러움 속에서도 각자의 몫을 위해 바지런히 움직인다. 후배 작가의 전시회가 서울에서 열린다는 소식도 받았다. 지역작가들이 타 지역에서 개인전을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작업실에서 고뇌의 시간을 보낸 결과물들을 내놓는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전시회 소식은 분명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끼게 한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정크아트 전시회는 어떤 모습일까 걱정 반 설렘 반이다. 시계추는 쉼 없이 줄기차게 달려간다. 버려진 폐기물들이 남긴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문명은 언제나 인간에게 이로운 존재로 남을 것인지 환경문제가 개인과 국가 간에도 끊임없는 힘겨루기가 지속된다. 그러나 가을이 오면 우리 모두는 농부의 마음 같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작가들이 바깥세상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 놓는다. 그래서일까, 가을은 누구나가 예술가이고 싶은 계절이다.
 

 글 = 박인선(정크아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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