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도(空島)정책 독도 이면사
공도(空島)정책 독도 이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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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2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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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과 조선초 시기에 외딴 해안마을이나 주요 섬의 백성들을 내륙으로 이주 시키는 공도(空島)정책이 있었다.

▼ 공도정책은 동.서.남해안을 가리지 않고 약탈행위를 일삼는 왜구들 때문이다. 조정은 수척에서 수백여척이 해안지역이나 섬마을에 출몰해 노략질을 양민들을 닥치는대로 살해.납치하고 부녀자들의 겁탈.방화등 악행을 자행하는 왜구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 조정에서 토벌에 나서곤 했으나 한계에 부딪치자 펼친 정책이 거주 백성을 내륙으로 이주 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영산현으로 불린 흑산도 섬주민을 지금의 나주시 영산포로 이주 시키고, 1403년(태종3년)에 울릉도 거주 양민을 내륙으로 이주 시킨것도 왜구들의 노략질을 피하기 위한 공도 정책 일환이었다.1800년 대 후반 울릉도에 주민이 들어가기 까지 4백여년 넘게 공도였던 셈이다.

▼ 맑은 날 울릉도에서 훤히 보이는 독도다. 태종과 세종시 기록에 우리 영토임이 분명한 독도에 대한 언급이 적지않다. 공도정책은 왜구로 부터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을 뿐이지 우리영토인 섬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선조들의 섬과 바다를 보호하는데 소홀한 근시안이 오늘날 독도 논란의 빌미가 된것이 아닌가 싶다.

▼ 일본은 메이지 유신후 국토 가까이 있는 무인도를 편입하기 시작 1891년 유황도(硫黃島)를 편입후 여기저기 손을 대다가 당시 무인도인 독도에 눈독 들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1998년 일본 자위대가 독도 상륙 비밀 훈련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5일 우리 군 당국이 시작한 독도방어 훈련규모가 예년보다 2배 이상 늘렸다고 한다.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일본에 틈을 보여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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