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밟고 기억을 줍다
추억을 밟고 기억을 줍다
  • 이소애
  • 승인 2019.08.26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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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즐거움을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자신을 평가한다. 나름대로 작은 것과 적은 것에 만족하면서 행복의 비결 메뉴에 따라서 하루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랬던 사람도 청춘은 가고 노인이 되었을 때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외로움과 견디기 어려운 소외감에 젖는다. 죽음에 대한 준비를 자신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걸음으로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때의 절망감도 있다. 착하고 겸손하게 사는 행복의 비결이 그들을 인도하고 있다.

 후회 없는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즐거움은 스스로 만든다고 하는데 책상 앞에 시계 그림을 그려놓고 시곗바늘을 어떻게 그릴까?

 프랑스 몰입형 미디어아트는 관람객에게 독특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는 전시를 제주 성산 ‘빛의 벙커’에서 전시한다. 수십 대의 빔프로젝터와 스피커에 둘러싸여 작품과 음악에 몰입할 수 있는 전시였다. 작품과 내가 하나가 되는 아미엑스 전시였다. 잠시 예술문화에 감동이 되어 행복감이 생각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빈)의 황금과 독특한 특성인 그의 성공을 집약한 작품 <키스, 1908~1909>에서 나의 청춘이 말려들어 갈 때처럼 황홀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세상과 타협하는 일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다. 자신에게는 너무 혹독하므로 요즈음 잘못 살아온 발자국이 삐뚤빼뚤 보일 때 후회하기 전에 우울증이 문 열고 먼저 나를 두드린다.

 잠시 가난했지만 자유로웠던 추억으로 들어가면 행복이 저절로 사립문을 열고 들어올지도 모른다.

 토끼풀 꽃을 보면 꽃반지를 끼워주던 풋풋한 옛사람을 떠올려 보면서 굵은 손마디를 만져보는 일로 추억을 밟아 본다. 동문사거리 삼양다방에서 낡고 오래된 사람을 찾아 잊혀가는 기억을 줍기도 한다.

 다방 창가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저 남자. 다방 레지의 살짝 보이는 겨드랑을 살짝 훔쳐보았던 야릇한 웃음이 기억을 수십 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을 거다.

 뚝배기 찻잔에는 날달걀 노른자가 아침 햇살처럼 형광등 불빛을 소파에 그늘을 만들고 있다. 심심풀이로 성냥개비를 부러뜨리다가, 높이 높이 탑 쌓기를 하다가, 찍찍거리는(옛날에는 소리가 났다)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목소리를 흘려보내다가, 한쪽 다리를 덜덜 털다가, 잠들어 버린 저 남자를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이 나의 기억을 흥미진진하게 끌고 갔다.

 행복하게 사는 비결. 청춘의 기억을 줍는 일이다. 물건을 손으로 만져 볼 수 있고 의자에 앉아 볼 수 있는 ‘전주 난장’의 추억은 가까워지는 명절을 기하여 외로움을 달래 준다.

 현실의 나를 더 행복하게 해주는 기억을 줍는다.

 옛 가난의 눈물을 줍는 일이다. 전당포는 서민들에게 구원자였다. 어머니의 금반지는 결국 전당포를 들락거리다가 눈에 보이지 않았으며, 비로드 한복과 은수저가 자취를 감춘 건 전당포가 보이는 골목으로 집을 옮긴 후였다.

 대한가족계획협회의 표어는 정부의 지시?에 순응했던 젊은 피가 들끓었다. 참으로 앞으로의 나라를 내다보지 못한 빛바랜 표어를 보고 소득공제에 인색하고 한 치 앞도 보지 못한 정부 정책에 질책하고 싶었다.

 “딸 아들 구별 말고/둘만 낳아 잘 기르자” “둘도 많다” “하나 낳아 젊게 살고/좁은 땅 넓게 살자”

 행복의 비결이 무엇일까?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다가오는 명절에 우울증을 단숨에 날려 보낼 행복을 누리기 위하여 추억을 밟아가면서 기억을 줍고 만져보는 일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이소애<시인/전주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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