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개전전야 ⑦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개전전야 ⑦
  • 김재춘 기자
  • 승인 2019.09.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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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黨爭)의 불똥이 전라도(全羅道)를 태우다
정여립 상상도

  1589년(선조 22년( 6월, 대마도주 종의지와 중 현소가 소서행장의 은밀한 밀령을 받고 조선에 들어와 다음해 3월 조선통신사 황윤길, 김성일 일행과 함께 일본으로 떠나기까지 그들은 장장 9개월을 한양의 일본사신 전용숙소인 동평관(東平館)에 머물러 있었다.

 왜 그토록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것일까?

 그때 조선의 조정에는 큰 사건이 일어나 아예 그들의 존재조차 잊을만큼 경황이 없었다.

 뒷날 조선왕조가 망하는날까지 두고두고 전라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이른바 정여립(鄭汝立) 역모(逆謀)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이웃 적성국가의 동향이 어떤지 관심조차 없었고 침공해 온다고 은근히 협박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은채 전국의 방어진지들을 군사도 없이 텅비워 놓고 있언ㅆ던 조선의 조정이 그해 10월2일 황해도에서 올라온 한장의 비밀 장계(狀啓:보고서)에 발칵 뒤집하고 말았다. 위로는 임금으로부터 조정의 대신들까지 아래로는 군현(郡縣)의 수령들과 육방(六房)관속들 그리고 오가작통(五家作統)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국가 총동원의 일급 비상이 걸려 있었다.

 장계는 황해 감사 한준(韓準)이 보낸 것으로 안악(安岳)군수 이축(李軸), 재령(哉寧)군수 박충간(朴忠侃), 신천(信川)군수 한응인(韓應寅) 3인의 연서로 되어 있었다.

 "전라도 사는 정여립이 역모를 꾸몄다"는 반역음모 적발 보고서였으며 이에 가담했다는 조인 2명을 같이 압송해 보냈다.

 선조는 조정 대신들을 비상 소집하는 한편, 예문관(藝文館) 검열(檢閱) 이진길(李震吉)을 옥에 가뒀다. 진길은 여립의 생질이었다.

 선전관과 의금부도사를 황해도와 전라도로 급파, 여립 일당을 잡아들이도록 했다.

 다음날 선조가 황해도에서 잡혀 온 죄인들을 친국 즉 직접 조사했다. 그런데 조사결과 이들은 이름이 이기(李箕)와 이광수(李光秀)라고 하는 황해도 안악지방을 떠도는 거랭뱅이들이었다. 역모가 무엇인지 정여립이 누군지도 몰랐다. 맥이 풀렸고 여립이 나타나 진상을 밝히면 부질없는 오보(誤報)일 것으로 보였다.

 10월7일 전라도에 내려간 의금부도사 유담(柳湛)의 보고가 올라왔다. 여립이 거처하고 있던 금구(金溝)처가를 덮쳤는데 도망가버리고 없었다는 것이다.

 조정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그가 죄가 없으면 왜 도망 쳤겠느냐"

 "필시 역모를 꾸민게 틀립없다"

 우의정 정언신(鄭彦信)만이 회의적이었다.

 "일개 서생(書生)이 무슨 수로 동병(動兵)을 할 수가 있겠느냐"

 조정에 강경론이 일기 시작했고, 西人들이 일제히 입을 모아 역적들의 일제검거와 경외(京外)의 계엄(戒嚴)을 주장했다. 서인으로 돈녕부사(敦寧府使)라는 한직에 있던 정철(鄭澈)이 앞장섰다.

 당시 조정은 영의정 柳전만이 중립이었고 좌의정 이산해, 우의정 정언신, 대사헌 이발(李潑)등 동인들이 지비했고 여립도 동인이었다.

 서인들에게는 반격의 빌미가 생긴 것이다.

 이진길, 전주부윤 윤자신(尹自新) 판관 나정언(羅廷彦)이 파면됐다.

 14일 경상도에 정윤우(丁胤祐) 전라도에 이대해(李大海), 충청도에 정숙남(鄭淑男)을 독포어사(督捕御使)로 내려보냈다.

 앞서 내려간 선전관 이용준, 내시 김양보(金良輔)가 여립을 찾아냈다. 안악사람 변숭복(邊崇福), 아들 옥남(玉男), 친구 박연령(朴延齡)의 아들 춘룡(春龍)과 함께 진안(鎭安) 죽도(竹島)에 있었다. 죽도에는 여립의 별장이 있었다.

 16일 선전관 일행과 진안 현감 민인백(閔仁伯)이 군사를 이끌고 죽도를 포위했다.

 여립과 변숭복이 자살했고 그때 나이 17세 였던 옥남과 같은 또래의 춘룡이 붙잡혀 여립의 시체와 함께 한양으로 압송됐다. 
 

 

 양재숙(梁在淑) 본사 수석논설위원 

 옮긴이 김재춘(金在春)

 1992년 1월22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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