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日행렬에서 ‘탄소천사’ 염원을 떠올린다
反日행렬에서 ‘탄소천사’ 염원을 떠올린다
  • 김창곤
  • 승인 2019.08.2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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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 위에 있는 독일’.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이를 열창하며 게르만 청년들이 군에 입대했다. 27세 작가는 대열에서 “독일 국기에 맹세한 자는 제 것으로 남길 게 없다”고 기록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3류 미술가 히틀러도 합류했다. 1914년 8월이었다.

 게르만 2000년 역사는 굴욕으로 점철됐다. 고대 로마는 변방 야만인이라며 도륙했다. 중세 이후 도시국가들로 찢겨 있었다. 나폴레옹에 짓밟히며 민족주의를 키워 1871년 통일의 소원을 이뤘다. 독일은 곧 산업생산에서 유럽 최강으로 떠올랐으나 식민지 경쟁에서 뒤져 있었다. 자유 시민공동체로 자라온 영국-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민족유전자로 ‘한(恨·Ressentiment)’을 물려받았다.

 전쟁에 열광하긴 프랑스인들도 마찬가지였다. 60판 넘는 시집을 낸 진보 시인은 41세에 중위로 입대, 전선으로 떠났다. 프랑스도 굴욕을 씻어야 했다. 1870년 프로이센에 개전한지 43일만에 황제가 포로로 잡혔다. 베르사유 궁을 통일 독일 황제 즉위식장으로 헌정하며 알자스-로렌을 제물로 바쳤다. 프랑스인은 가슴에 ‘복수(revanche)’를 새겼다.

 원한과 증오가 대재앙을 불렀다. 전쟁은 참호전과 대량 살상으로 4년을 넘겼다. 41세 진보시인도, 27세 작가도 전사했다. 첫 세계대전은 2,000만명을 희생시켰지만, 패전 책임만 물은 종전 협약은 게르만 민족주의를 악마로 부활시켰다. 히틀러는 2차 대전으로 향하며 입만 열면 ‘평화’를 말했다. 폴란드와 북유럽 3국, 베네룩스에 이어 프랑스를 점령하고 유태인 대학살을 예비하면서도 평화와 인도주의를 역설했다.

 이념은 굴종과 차별 속에 싹튼다. 조선 말 민족주의는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이분법과 통했다. 죽창을 든 동학농민군은 부적을 태워 마신 뒤 주문을 외우며 우금치 돌격을 이어갔다. 관군과 일본군의 캐틀링 기관총과 스나이퍼 소총에 몰살당했다.

 8.15 경축사에서 일본과 대화할 수 있다고 밝힌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전주를 찾았다. 효성이 탄소섬유 산업 도약을 위해 1조원을 투자하겠다며 전북도-전주시와 협약하는 자리였다. 대통령은 어려운 시기, 대단위 투자를 다짐한 기업에 감사하며 전방위 지원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되기 위해 핵심 소재 특정국가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거듭 밝혔지만, 탄소섬유 산업엔 전주시와 전북도의 십수 년 염원이 서려 있다. 지역 명운을 걸고 한국경제 새 성장엔진으로 내걸려던 사업이었다. 시민 응원도 컸다. 2012년 초 공장 착공 적기를 놓칠까 걱정하며 거리에 나섰다. 이름을 감추고 성금 대열을 이뤄 1억원 가까이 보탰다. ‘노송동 천사’에 이은 ‘탄소 천사’들이었다.

 한국 민족주의는 갈 길이 멀다. 친일잔재 청산 구호 속에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두 달째다. 집권세력 일부와 이념단체는 반일 프레임을 만들고 이적 몰이를 한다. 민족주의는 평등주의 못지않게 강한 마력으로 포퓰리즘 동력이 돼왔다.

 아일랜드인은 700여년 영국 지배를 받았다. 영국인으로부터 ‘하얀 검둥이’라고도 불렸다. 아일랜드는 1인당 GNP 7만달러로 영국(4만 달러)을 앞지르며 반영 감정을 극복해냈다. 민족주의의 피눈물 장벽을 실용주의가 하나씩 걷어내며 성취해낸 자존감과 품위였다.

 한국 첫 자동차 포니는 ‘전범기업’ 미쓰비시 엔진을 얹었다. 포항제철 건설을 지원한 신일철, 삼성전자에 반도체 기술을 제공한 산요도 전범기업에 올라 있다. 삼성전자는 순이익에서 일본 전자 기업 10곳을 합친 것보다 많다. 포항제철도 신일철을 앞질렀다. 한이 깊을수록 고요하고 치밀해진다. 증오와 반목보다 소통과 협력, 분업과 경쟁이 이 땅에 번영과 품격을 가져왔다. 탄소산업 도약의 다짐 속엔 이런 뜻이 숨어있을 것이라 믿는다.

 김창곤<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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