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 처능, 조선 불교 철폐에 맞서다’
‘백곡 처능, 조선 불교 철폐에 맞서다’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9.08.21 18: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 중기 가혹한 척불의 시대 상황에서 냉철한 논리로 척불의 시정을 촉구한 인물이 있다. 백곡 처능(1617~1680) 스님은 불교를 말살하려는 기득권 세력과 임금을 정면으로 비판한 8150자에 달하는 상소문 ‘간폐석교소’를 올려 온 몸으로 불교를 지켜낸 인물로 기억된다. 왕조 국가에서 국왕에 대한 비판은 유래가 없는 일이며, 그것도 숭유억불의 조선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백곡의 의기는 한국 불교사에 일대 획을 긋는 사건임에도 깊이 있게 조명되지 못했다. 벽산 원행 조계종 총무원장의 발원으로 빛을 보게된 ‘백곡 처능, 조선 불교 철폐에 맞서다(조계종출판사·2만2,000원)’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책은 원행 스님의 박사학위 논문 일부를 저본으로 삼고, 백곡의 생애와 함께 우리말로 번역한 ‘간폐석교소’의 원문을 덧붙이며, 또 그 내용과 의의에 대해서 분석하는 내용을 담아 구성돼 있다. 여기에 여러 권의 불교 교양서를 집필한 대표적 학승 자현스님이 공동 저작으로 참여했다.

 책 속에 담긴 백곡의 이 상소문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불교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분위기가 살기를 드리울 정도로 경색되어 있던 시기에 유학자들의 맹목적인 불교 비판에 맞서 이를 논리적으로 반박했기 때문이다.

 백곡은 먼저 부처님의 탄생과 열반 그리고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고 널리 알려지게 된 역사에 대해 간단히 서술하고 나서 본론에 들어가 우리나라에서 불교를 배척하는 근거를 6개 항으로 간결하게 정리한다. 불교를 배척하는 것이 부당함을 폭넓은 사례와 해박한 지식을 예로 들어 논리정연하게 역설해 위정자들의 시정을 촉구한 것이다.

 첫째 불교를 믿은 군신의 사례와 그 과보, 둘째 폐불과 관련된 군신의 사례와 그 과보, 셋째 유학자들의 척불과 숭불 사례, 넷째 무불설에 대한 반박, 다섯째 불교 유해론에 대한 반박,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숭불 사례가 그것이다. 또 중국의 유학자들이 불교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불서 읽기를 좋아했다는 예를 들어 보이기도 한다.

 백곡이 상소를 올린 결과가 어떠했는지 정확히 전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봉은사와 봉선사는 끝까지 존속되었고, 현종이 만년에 봉국사를 창건하는 등 불교를 믿은 흔적이 보여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책의 공동 저자인 벽산 원행 스님은 출간에 부쳐 “제4차 산업혁명의 일대 전환기 속에서, 한국불교에 가장 필요한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책임의식과 선공후사 멸사봉공의 자세가 아닌가 한다”면서 “이런 점에서 백곡의 숭고한 실천은 시대를 뛰어넘는 훌륭한 귀감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원행 스님은 1973년 태공 월주 큰스님을 은사로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에서 출가했다. 해인사승가대학과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한 뒤, 동국대 교육대학원과 불교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학문에 대한 깊은 열정으로 한양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제17교구 금산사 주지,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 회장, 중앙승가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다.

 김미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