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개전전야 ②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개전전야 ②
  • 김재춘 기자
  • 승인 2019.08.21 0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세계(世界)로 눈뜨기 시작한 군국일본(軍國日本)

  그무렵 일본의 왜구들 또한 조선반도의 남서해안뿐 아니라 중국 연안을 따라 남쪽으로 노략질의 무대를 넓히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만남은 숙명적이기도 했다.

 포르투갈 등 서세가 동방무역의 이익을 쫓아 동점했듯이 일본은 서방무역의 이익을 쫓아 서점(書漸)을 시작한 것이었다.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 중엽까지 100여년 사이에 일본정부로부터 주인장(朱印狀)을 받아 해외에 나간 일본인들이 무려 7만여명에 이르렀다.

 주인장(朱印狀)이란 일본 정부가 해적 즉 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발행한 것이었다. 대만, 루손(필리핀), 안남(월남), 캄보디아, 샴(태국), 말레이지아, 자바섬에 이르기까지 동남아 제국에 거류지역을 이루고 정착해 살았던 일본인들도 1만여명에 이른 것으로 기록이 전하고 있다.

 루손의 마닐라 교외 산 미구엘에는 3천명, 샴의 이유차에는 1천500명이 거주했다. 조선의 부산포 왜관(倭館)에도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의 일본 상인들이 거주했다.

 이의 해외진출은 무역을 통해 일본의 국부(國富)를 늘리는데 기여했다. 일본인들의 진취적 기상이 해외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것이었으며 제국주의 일본 건설의 자본축적이 시작된 것이었다.

 조선(造船)기술과 항해술로 크게 발전하여 포르투갈 상선을 모방하여 1613년에 일본인이 만든 배로 지창상장(支倉常長·하세쿠라 쓰네나가)이 90일간의 항해끝에 태평양을 횡단, 멕시코 서해안의 아카폴코항에 도착했다. 아카폴코는 그때 세계무역의 중심항구였다.

 일본인들의 모방과 창의의 특성은 조총의 생산과 보급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나고 있었다.

 포르투갈 상인들로부터 전수 받은 조총은 구주의 계(堺·사까이)와 근강(近江)의 국우촌(國友村)이라는 지방의 철공소에서 대량으로 제조되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일본군의 전술과 편제를 근대적인 것으로 급변시켰다.

 朝·日전쟁이 터지기 17년전 1575년 소설 대망(大望)으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고 풍신수길에게 천하통일의 기조를 다져준 직전신장(織田信長·오다 노부나가)은 3,500명의 조총부대를 편성, 방책뒤에 배치해 두었다가 기세좋게 달려드는 무전승뢰(武田勝賴·다케다가 쓰요리)군의 기병대를 일제사격으로 일거에 전멸시켜 버렸다.

 일본이 조총을 전수 받은지 32년만의 사건이었으며 조총을 전해준 서유럽 사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세계 최초의 근대적인 소총전이었다.

 1549년에 일본에 천주교가 전파됐으며 조·일전쟁 무렵에는 전국 200여개 교회에 15만여명의 신도가 있었다. 신도들 가운데는 대우종린(大友宗麟·오토모소린) 등 영주(大名·다이묘)들이 포함된 지배계급도 많았고 조선 침공군의 선봉장 소서행장(小西行長·고니시 유끼나가)도 천주교도 였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지배계급이 서구적 안목과 사상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그 무렵, 강력한 통일정부아래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있어서 세계를 향해 뻗어나기 시작하는 일대 변혁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며 군국(軍國)일본의 전통이 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의 조정은 이같은 일본의 변혁에 대해 깜깜무지였다.

 조선왕조의 전통적인 대외정책은 사대교린(事大交隣)이었다.

 큰 나라이고 문화가 발전한 明나라에 대해서는 事大의 예로 섬기고 ‘작은나라’이고 미개한 남쪽의 일본(倭)이나 북쪽의 여진(女眞·만주족)에 대해서는 이웃으로 사이좋게 지낸다는 정책이었다. 일들은 걸핏하면 변경을 침범, 노략질을 일삼는 귀찮은 존재들로 적당히 회유책을 썼다.

 그러나 명에 대한 사대는 성공했으나 일본과 여진에 대한 교린은 실패했다.

 명을 중화(中華)로 섬기다보니 일본과 여진에 대해 조선은 스스로 소화(小華) 즉 작은 중국으로 자처했고 이들을 아예 무시해 버렸다. 이들의 국내 사정이나 동향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양재숙(梁在淑) 본사 수석논설위원 

  옮긴이 김재춘(金在春)

 1992년 1월8일 게재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