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베일 벗은 국립민속국악원 창극 ‘지리산’
<리뷰>베일 벗은 국립민속국악원 창극 ‘지리산’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9.08.1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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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역사 파노라마 의미, 밋밋한 전개 아쉬움
창극 지리산 공연 장면

 국립민속국악원이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며 제작한 창극 ‘지리산’이 광복절인 지난 15일 베일을 벗었다.

 지리산 속 오래된 마을인 와운마을을 중심으로 펼쳐낸 해방 전후, 목도해야했던 아픔의 역사를 투영한 작품은 ‘NO 아베’를 외치고 있는 지금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객석의 공감을 이끌었다.

 작품은 일제 시대부터 미 제국주의의 등장과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까지 격동의 현대사를 깊숙한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냈다. 그 시대를 몸소 경험한 세대들에게서 눈물과 회한, 박수갈채를 받았고,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한일간의 분위기가 상극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젊은 세대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이 같은 객석의 분위기는 예술이 감당해야할 시대적 사명, 역사적 배경과도 그 맥을 같이하면서 그 의미를 더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풀어내기 만만치 않은 방대한 현대사를 하나의 맥락으로 끌어간 노력이나, 국립단체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쏟아낸 정성을 무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극의 전개가 밋밋하고 지루했다는 비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보였다. 물론,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재미로 포장한다는 말이 어불성설일 수 있지만,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다룬 장면마저도 긴장감이 제로였다면 문제다.

 사실, 극의 초반 노고할매가 등장해 설화를 전하며, 마을 사람들이 둘러앉이 정담을 나누는 장면 등에서는 판타지적인 느낌이 강해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후반으로 가면서 현대사의 줄기를 액면 그대로 풀어내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흥미를 떨어지게 만들었다. 현대사를 나열하는데만 그친 극의 전개로 지루함은 배가 됐다.

 극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 또한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했다. 전쟁 속에 피어난 휴머니즘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지, 길상과 반야의 사랑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전쟁 속에서도 유지되고 있는 삶의 공동체의 모습인지, 공동체를 흔들리게 만드는 악의 세력에 대한 비판인지 말이다. 화살을 쏘는 방향이 명확하지 못한데다, 수성반주에 목소리가 묻혀버리는 등 객석에 전달되는 과정 또한 매끄럽지 못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이 크게 남은 것일 터다. 거대한 현대사의 흐름 속 각인이 될만한 역사 속 한 장면을 끄집어내 집중했다면? 초반의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이어가면서 지리산 호랑이와 같은 상징적인 이미지를 강조할 수 있는 동화나 우화 형식으로 끌어갔다면? 노고할매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코드로 전쟁 중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그림을 그렸다면? 큰 아쉬움에 몇 가지 질문이 남게 되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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