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 두 명상(名相)
청백리 두 명상(名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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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1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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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를 통털어 청백리로 오늘날 까지 표상으로 삼는 두 명상은 초선초기 황희와 조선후기 정원용이 대표되고 있다.

 ▼ 황희는 세종때 최고령 영의정. 정원용은 순조때 등과 후 다섯 임금을 거쳐 72년간 벼슬살이를 했다. 두 재상은 개인의 영달보다는 나라를 위한 충심과 강직한 성품으로 정치도 잘하는 명상으로도 대표되고 있다. 두 재상은 공통점도 많다. 선조들이 요직을 거친 명문집안 출신에 20여년 간 정승을 지낸 경력도 닮았다.

 ▼불의와 타협 할줄 모르고 임금에게 바른 말을 하고 백성에게는 너그러워 약자를 위한 공직자로서 추앙 받고 있었다는 점. 가옥도 초라해 비오는 날이면 빗물받는 통을 안방에 놓고사는 근근한 살림살이지만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지 않은 점도 같다. 전해오는 많은 일화 중 황희의 솜을 두르고 입궐했다는 일화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 황희가 쉬는 날 부인이 그의 옷을 빨고 있는데 급히 입궐하라는 왕명이 떨어졌다. 단벌이라 할 수없이 솜을 두르고 입궐했는데 왕은 양피인 줄 알았다고 농담하며 위로했다고 한다. 정원용도 처가는 부잣집이었으나 전혀 도움은 받지 않았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관료사회의 청렴도 기준을 가르는 사불삼거(四不三拒)라는 불문율이 있어 공직사회의 귀감으로 삼아왔다.

 ▼최근 새 장관급 후보자 7명이 인사청문을 앞두고 있다. 재산은 수십여억원에서 1백억대에 이르고 집이 두채인 후보자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문회 때마다 나오는 재산증식.위장전입.세금탈루 등과 관련한 각종 비리 의혹들이 제기되는 현실이 안타깝다.무슨 고리타분한 비유냐고 할런지 모르나 두 명상같은 청백리를 바라는 것은 요즘 세상에서 무리 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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