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서 모자가 굶어죽다니!
서울 한복판에서 모자가 굶어죽다니!
  • 김종회
  • 승인 2019.08.13 1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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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을 기억하십니까?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단독주택 지하 1층에 살던 박 모 씨와 두 딸이 생활고를 겪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지하 셋방에서 살던 세 모녀는 질병을 앓았고 수입도 없는 상태였으나, 국가와 자치단체가 구축한 그 어떠한 사회보장체계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이들은 집세와 공과금 70만원이 든 봉투와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극도의 상황에서도 약속과 자존을 지키려 했던 세 모녀의 유서는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세 모녀가 작성한 가계부는 이들의 처절한 삶을 낱낱이 보여줬다. 라면, 소시지, 오뎅(어묵), 식빵 등 대체로 1~2천원대의 저렴한 품목들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월세와 공과금을 밀리지 않고 냈다.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겠다는 세 모녀의 마음가짐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쓰리게 했다.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은 대한민국 사회복지 제도의 민낯을 여과 없이 노출한 비극적 사건이었다. 제도적 허점상 이들은 기초생활 수급자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이들은 자살하기 3년 전 관공서에 복지 지원을 타진했으나 대상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 재신청을 하지 않고 생활해 왔다. 어머니 박씨가 식당에서 일할 당시 월 120만원의 소득이 있었으며 큰딸의 질병인 당뇨와 고혈압은 근로가 불가능할 정도의 병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가족 중 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 2명으로 간주해 기초생활 수급자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맹점을 드러냈다.

 어머니가 사건 발생 한 달 전 넘어져 식당일을 나갈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세상에 빚을 지기 싫다며 꼬박꼬박 공과금을 제때 납부했기 때문에 관할 기관인 송파구청은 세 모녀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인지했다 하더라도 제도상의 허점 상 지원은 불가했다.

 이들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부채의식이 작동한 결과 이른바 ‘세 모녀 법’이라는 별칭으로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개정안을 적용해도 세 모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로부터 4년 후인 2018년 충북 증평에서는 41세 여성이 네 살배기 딸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여성은 “남편이 숨지고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며 혼자 살기도 어렵다. 딸을 데려 간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구멍 뚫린 대한민국 사회안전망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다.

 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모자(母子)가 또 굶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10년 전 입국한 탈북여성이 아들과 함께 살던 셋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달 31일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한모씨와 여섯 살짜리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모자의 통장 잔고는 0원이었다. 여러 정황상 굶어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모자가 발견됐을 당시 집에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곤 봉지에 든 고춧가루가 전부였다.

 모자가 살던 13평 아파트는 보증금 547만원, 월세 9만원짜리였다. 집에서 발견된 통장에 찍힌 잔고는 0원. 5월 중순 3,858원 잔액을 모두 인출한 게 마지막이었다. 이로부터 약 2주 뒤 이들 모자는 사망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숨진 지 두 달 후 뒤늦게 사망 사실이 확인됐다.

 한씨가 최근까지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아동수당과 양육수당 각 10만원씩, 월 20만원이 전부였다. 그나마 받던 아동수당도 연령제한으로 올해 3월부터 지원이 끊겼다. 통일부의 탈북자 관리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사실이 또다시 확인됐다.

 다이어트와 관련해 산업이라도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살빼기 전쟁’이 한창인 대한민국의 한복판에서 아사(餓死)라니!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제2의 송파 세 모녀 사건’ ‘제2의 관악 모자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숙제로 떨어졌다.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당사자들이 자존심과 여러 여건상 각종 복지 제도 지원을 신청하지 않아도 사전에 파악해 극단적 선택을 막을 시스템 구축도 빠뜨릴 수 없는 과제다.

 김종회<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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