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큐멘터리 영화 리뷰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을 앞두고
두 다큐멘터리 영화 리뷰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을 앞두고
  • 이휘빈 기자
  • 승인 2019.08.08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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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지난 7일 수요일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주전장’과 ‘김복동’이 상영했다. 두 영화 다 평일임에도 전체 객석의 절반이 관객들로 찼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주먹을 꼭 쥐기도 하고, 흐느낌을 참으려 이를 악물기도 했다.

 두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주전장’은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극우사람들과 이에 맞서는 사람들의 주장을 보여준다. ‘김복동’은 인권운동가로 활동한 김복동 할머니가 활동한 기록이다.
 

 △ 일본 우익들의 주장이 갖는 허점과 그들이 꿈꾸는 ‘새 일본제국’

 “국가는 사죄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는 예를 들어 그것이 진실이라고 해도 사죄를 하는 순간 끝입니다”

 미키 데자키 감독의 작품 ‘주전장’에서 일본의 극우 역사학자 후지오카 노부카츠는 이 말을 하며 카메라를 향해 정면을 바라봤다. 그것은 인간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며, 국가 아래서만 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더 강한 국가를 위해서는 무엇이건 하겠다는 독재자들의 피냄새나는 주장과 닮아 있었다.

 영화 주전장의 시작은 극우 친일 유투버 ‘토니 마라노’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린데일 시에 설치된 소녀상을 향해 역겹다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키 감독의 시선은 거기에 맞서 ‘왜 이들은 이런 주장을 하는가’로 옮긴다. 사쿠라이 요시코, 스기타 미오, 켄트 길버터 등 일본의 극우세력의 주장은 얼핏 들으면 논리적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세세한 진술은 일관적이지 않고, 위안부들은 전장에서 돈을 많이 벌었으며, 일본군이 직접적으로 이들을 협박하고 가둔 증거는 없다.

 역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은 시간이 갈수록 늙어가지만 진술의 기본적인 내용은 일관적이고, 당시 현지의 물가는 인플레이션으로 높은데다 돈을 번다는 것으로 이들이 속아넘어가거나 강제납치되었다는 것에 책임이 없을 수 없으며, 일본군은 제2차세계대전 패전 이후 약 70%의 군사서류를 폐기소각했다.

 아베 내각과 일본 극우인사들은 ‘일본은 아름다운 나라이며, 어떠한 문제와 오욕도 없다’고 주장했다. 식민지 지배와 제 2차세계대전은 아시아를 지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일본 우익들은 여전히 위안부, 정신대, 학살에 대해 여전히 ‘거짓말이다’라고 일본과 세계를 향해 주장하고 있다. 감정적으로 맞서는 반대 주장들은 ‘일관되지 않은 진술’로 여겨져 그들 주장의 확신성에 대해 빌미가 된다. 이들은 세세한 부분에 대해 집어내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진술에 소리높여 정당성을 확보한다.

 미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 말한다. “최악의 이야기, 과장에 초점을 맞추지 말아달라. 일본 우익들의 주장에 박차를 가할 뿐이며 일본인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도 박탈시킨다.”
 

 △ 김복동 할머니는 노구(老軀)를 끌고 집회에 섰다

 김복동은 1926년 5월에 태어나 16살 되던 때 공장으로 일을 보내준다고 마을 동장과 일본 브로커에 속임을 당해 전쟁터에서 위안부로 있었다. 그녀는 나레이션에서 ‘돌아오니 나는 23살이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김복동은 1992년 mbc의 취재요청을 시작으로 27년동안 아픈 몸을 끌고 전세계와 서울의 시위현장을 찾았다. 김복동은 ‘위안부는 증거가 없다’고 말한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도루의 사죄를 받기 위해 오사카 시청을 찾았고, 미국과 유럽에서 자신의 과거를 몇 번이고 털어놓았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결정에 대해 임성남 외교부 1차관에 대해 ‘어째서 피해자의 얘기를 듣지 않았는가’라고 질문했다. 김복동의 입은 말을 할 때가 아니면 앙다물어져 있었다.

 이 입이 풀어질 때는 김복동이 어린 학생들을 만날 때였다. 학생들이 할머니라고 부르며 손을 잡을 때, 김복동의 손은 어린 학생들의 손을 꼭 잡았고 ‘너희들이 나와 같은 아픔을 가져서는 안된다. 공부를 잘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복동의 동생 김귀동은 영화에서 ‘언니가 공부를 잘 하고 고집이 세서 할 말은 꼭 했다’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김복동이 손을 잡아주고 등을 토닥여준 학생들의 모습에서 김복동의 어린 시절이 보였다. 김복동은 아이가 없었고 남편과 사별했다.

 김복동은 2019년 1월 28에 암으로 죽었다. 현재 살아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2019년 8월 기준 20명이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살아있는 할머니들이 다 죽고 나면,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청할 직접적인 피해자가 사라진다. 김복동은 고난에 찬 시대를 갖고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던 시간을 보내다 위안부의 문제를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과 함께 늙은 몸으로 함께 살았다. 일본 정부의 극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고, 서울 종로구의 소녀상은 일본대사관을 향해 말없이 눈동자를 닫지 않고 있다.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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