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한 줌, 팥 한 줌, 좁쌀 한 줌, 추억 한 줌
콩 한 줌, 팥 한 줌, 좁쌀 한 줌, 추억 한 줌
  • 박성욱
  • 승인 2019.08.08 16: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렸을 적 안방 옆 ‘광’이 있었다. 그곳은 좀 특별한 공간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부뚜막, 온돌이 있는 한옥이었다. ‘광’은 한 지붕 아래 작은 방, 안방 옆에 있었지만, 온돌이 없었고 나무 바닥이었다. 여름에는 시원해서 종종 잠을 자기도 했다. ‘광’에는 집안 살림살이가 가득 있었다. 부엌에 두지 못한 자기 그릇, 온갖 주방용품이 있었다. 또한, 좁쌀, 보리쌀, 쌀, 콩, 밭 등 곡식들이 있었고 선풍기, 전기밥솥 등 가전제품이 있었다. 지금 아파트로 보면 다용도실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가끔 ‘광’에 들어가 곡식 자루를 열고 좁쌀, 보리쌀, 쌀, 콩, 곡식 등을 손으로 만지작만지작하면서 놀았던 일이 생각난다. 한 손 푹 넣어 손 안 가득 움켜 주면 지압이 되고 손을 펴면 쓰르락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도 좋았다. ‘얼맹이’ 지금 체와 비슷한 도구인데 콩과 쌀 섞어 놓고 분리하면서 놀기도 했다. 옆으로 흔들면서 손바닥으로 옆을 치는 ‘탁 탁’ 소리, ‘쏴아악’ 폭포 소리도 난다.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은 저녁밥을 빨리하시기 위해 미리 저녁밥 지을 쌀을 씻어 놓으라고 하셨다. 쌀 반 되에 콩 세 줌, 어느 날에는 쌀 반 되에 좁쌀 세 줌, 또 어느 날에는 쌀 반 되에 판 세 줌 이런 식으로 밥을 하기도 했다. 콩 한 줌 판 한 줌 좁쌀 한 줌이 내 어렸을 적 놀이였다. 어머니 몰래 ‘얼맹이’를 들고 냇가로 가서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물풀 사이로 ‘얼맹이’를 깊이 넣어 빠르게 떠올리면 미꾸라지, 붕어, 송사리, 버들치 등 여러 가지 물고기가 잡혔다. 잡은 물고기는 냇가 가장자리 모래톱에 큰 물웅덩이를 파서 넣었다. 해가 저물가 갈 즈음 잡은 물고기는 모래 물웅덩이를 둑을 허물고 물길을 내서 냇가로 돌려보냈다. 물에 젖은 ‘얼맹이’를 탈래탈래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4학년 1학기 과학책을 펼치면 혼합물 단원이 나온다. 여러 가지 물질이 섞인 혼합물을 알갱이에 크기에 따라 분리하고, 자석에 붙는 성질에 따라 분리하고, 녹이고 증발시켜서 분리한다. 때로는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면서 이것이 공부일까? 놀이일까? 의문을 품는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면서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원래 공부는 재미있는 것인데 시험지 풀고 점수 못 나오면 혼나고 어려운 질문하고 대답 못 하면 또 혼나고 하니까 공부는 재미없고 싫어하고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큰 그릇에 콩, 팥, 좁쌀을 부어서 섞는다. 처음에는 손가락을 집어서 콩, 팥, 좁쌀을 각각 작은 그릇 세 개에 종류대로 나눠 놓는다. 아이들 손이 작아서 그나마 작은 콩, 팥, 좁쌀을 집어내자면 생각보다 잘 집어지지도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손가락으로 집어내기보다는 체로 막 걸러내기가 훨씬 빠르다. 알갱이 크기에 맞는 체를 써야 한다. 책상 위에 큰 접시를 놓는다. 한 손으로 눈의 크기가 큰 체를 들고 한 손으로는 콩, 팥, 좁쌀 혼합물을 눈이 큰 체 위에 살살 붓는다. 살살 흔들면 콩은 위에 남고 팥과 좁쌀이 빠져나가 큰 접시에 떨어진다. 금방 콩이 분리된다. ‘우와!’ 별 것 아닌 것에 아이들은 감탄을 잘한다. 이제는 눈의 크기가 작은 체를 사용하여 팥과 좁쌀을 분리할 차례다. 또 다른 큰 접시를 책상 위에 놓는다. 마찬가지로 한 손으로 눈의 크기가 작은 체를 들고 한 손으로는 팥, 좁쌀 혼합물을 눈이 작은 체 위에 살살 붓는다. 살살 흔들면 팥은 위에 남고 좁쌀이 빠져나가 큰 접시에 떨어진다.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 그것대로 제 성질대로 분리가 된다.

 

 <추억 한 줌에 아쉬움>   옛것은 옛것대로 지금 쓰는 것은 지금 쓰는 것대로 그렇게 시간 속에 남는다. 지난 시절 속에 나도 나고 지금 있는 나도 나다. 지나간 시간 속에 내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런데 내 어릴 적 작은 놀이터 ‘광’에 있었던 ‘얼맹이’는 어디로 갔을까? 언 30년 동안 잊고 살았던 ‘얼맹이’. 아이들과 과학 실험하다가 문득 소환된 ‘얼맹이’. 골동품 가게나 민속박물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손으로 만든 투박한 집안 살림살이 하나 둘 씩 버려지고 공장에서 팍팍 찍어내는 때깔 나는 물건들로 채워졌다. 어찌 보면 버린다고 의식하지도 못한 채 이 사람 저 사람 후다닥 빨리 버렸다. 하지만 떠나가지 않고 곱게 자리하고 있었던 어린 시절 소중한 추억들, 지금 아이들에게 그 감성을 어떻게 전해줄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사람 사는 것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데 말이다. 아이들도 스스로 어떤 공간에서 말 짓도 좀 하고 그러면서 놀고 느끼고 그랬으면 좋으련만 이 학원으로 저 학원으로 너무 바쁘다. 정작 시간에 생겨도 어떻게 놀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또 이렇게 또 하나의 징검다리 배움을 아이들과 나눈다. ‘얼맹이’와 함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