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 대한 예의
자녀에 대한 예의
  • 황진
  • 승인 2019.08.0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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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게 가장 귀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이다. 생명이 없다면 귀하다는 재산과 명예는 물론 온 우주가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을 우리 인생을 통하여 공유하는 존재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자녀들이다. 그래서 자식들은 그러지 않을지 몰라도 부모에게 자식은 생명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다.

 자사고(자립형 사립고) 문제로 우리 사회가 시끄럽고 대립적이기까지 했다. 이 논란의 문제는 결국 자녀들이 소수의 안녕한 사람들이 아닌 안녕하지 못한 다수에 편입되어 인생을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노심초사한 부모들의 가치관 문제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한 번의 패자가 다시 부활하기 어려운 사회 구조이며 소수의 안녕한 사람들과 다수의 안녕치 못한 사람들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 이래 그렇지 않은 사회는 없었거니와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의 세계와 한국사회는 더욱더 이러한 경향이 심화하고 있다.

 그런데 부모들은 자녀를 명문대학에 보내서 ‘유능한’ 사회인으로 성장시켜야 하는 것과 동시에 ‘올바른’ 사회인으로까지 성숙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올바름은 착함을 원하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이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를 위한 철학이고 신념이다. 구체적으로는 안녕치 못한 사람들을 위한 안녕한 사람들의 손해를 무릅쓴 변호, 이것이 올바름이다. 이것은 타인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 혹은 손자들을 위한 자기애의 또 다른 방식일 뿐이다. 18세기 조선시대 실학자 담헌 홍대용 선생은 ‘남이란 한 큰 나’라고 하였다.

 우리 가운데 유능함과 올바름의 덕목을 함께 갖춘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변호인들이 더욱 많아질 때, 능력이 조금 모자라더라도 우리의 자녀들과 후손들은 좀 더 행복한 인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나는 내 자식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자녀들이 이러한 올바름과 유능함을 동시에 갖춘 성숙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이러한 바람이 나뿐만 이겠는가. 모든 부모들 역시 그럴 것이다. 그런데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라고 했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배우고 닮는다고 한다. 자녀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은 부모를 인생의 스승으로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자녀들이 사회 안에 유능하고 올바른 존재가 되는 것이 우리의 진실 된 바람이라면, 부모인 우리가 먼저 이 사회 속에서 더욱 유능한 존재가 되어야 하고 사회를 위하여 더욱 올바른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여름 한겨레 통일문화 재단과 함께하는 <바이칼로 가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여행>을 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의 하나는 데카브리스트와 그들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였다. 데카브리스트는 12월을 뜻하는 러시아어 데카브리(Dekabri)에서 온 말인데 ‘12월주의자’ 혹은 ‘12월 당원’이 된다. 이들이 러시아의 차르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봉기를 일으킨 때가 1825년 12월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러시아의 유명한 귀족 집안 출신의 청년장교들이었다. 최고의 금수저들임에도 이들은 공화제나 입헌군주국을 수립하고자 했으며 ‘농노제도 철폐’ 등을 주장하며 개혁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들의 의거는 실패하여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는데 그들의 민중에 대한 사랑에 못지않게 더 뜨거운 남편사랑을 보여준 그 부인들의 행적을 보며, 러시아의 저력을 실감했던 것이다. 이들의 행동과 사상은 집단지성의 힘이 되어 뒷날 러시아의 문학과 각종 개혁 및 혁명운동에도 밑거름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과 거리가 멀어 매우 부끄럽지만, 말은 사실대로 해야 한다면, 이것이 우리 소망에 대한 성실한 자세이며 지극히 사랑하는 자녀들이 그리되기를 원하는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정중한 예의>인 것이다. 자녀에 대한 예의는 거창한 것에서만 차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올바름과 유능함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삼고 자신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일이라면 우리 모두는 예의 있는 어버이로 살 수 있을 것이다.

 황진<前한국YMCA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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