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독자의 마음도 찰랑이고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독자의 마음도 찰랑이고
  • 이휘빈 기자
  • 승인 2019.08.0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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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희 작가 ‘찰랑이는 마음은 그냥 거기에 두기로 했다(하모니북·1만5,000원) 발간

 여행기는 글자로 독자를 먼 곳으로 보낸다. 여행자의 눈이 되어 글속의 공간을 순간을 의식으로 체험하는 동안 느끼는 감정은 오래지 않아 ‘나도 그 곳을 가보고 싶다’라는 욕심이 밀물 일 듯 높아진다. 권진희 작가의 ‘찰랑이는 마음은 그냥 거기에 두기로 했다(하모니북·1만5,000원)’라는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욕심은 썰물 빠지듯 흩어지고, 내 일상의 주변이 언제나 여행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책의 1부는 ‘안녕, 낯선 사람들’이다. 여행자들은 화자와 조우하며 깊은 조각을 남기기도 하고, 풍경이 주는 상처에 글의 마디마다 핏방울이 맺혀 있는 것처럼 아련하다. 작가는 남미의 바람을, 러시아 객차의 밤을, 치앙라이의 일상을, 12인용 침대방에서의 불면(不眠) 등을 마주한다. 이 순간들은 아무리 멀리 떠나 있더라도 사람의 마음은 쉽게 흐르고 굳어지다 다시 흐른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작가의 마음을 마주하다보면 굳어진 마음은 서서히 풀리고, 풀리던 마음이 조금씩 굳어져간다.

 2부 ‘지나는 계절들’은 작가가 보낸 작은 일상들이 구슬처럼 모여있다. 이 구슬들은 타인의 교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 속에 남은 사금파리들이 맺혀 있는 구슬이다. 작가는 마주하는 사람들,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남긴 순간을 여백을 두고 기록한다. 작가가 보는 전주는 여운을 잘근거리며 오랫동안 산책하는 곳이기도 하고 영화 ‘화양연화’처럼 언뜻 스친 인연들이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상반된 감정들이 오가는 지역에서 작가의 문장은 ‘헛디뎌 넘어지더라도 주저앉지 않고 또 휩쓸리더라도 단단하게’로 끝난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이 글은 사람과, 그리고 세상과 만나고 헤어지며 관계에 대해 고민한 나름의 기록이다”라며 “많이 읽히기보다 깊이 읽히기를 희망하며 지금까지의 여로를 이곳에 둔다”고 전했다. 하여 책을 넘기는 손길은 오랫동안 주저한다. 문장과 문장의 사이에서, 어느덧 자신의 모습이 비치기 때문이리라.

 권진희 작가는 전주에서 태어나고 유·소년기를 용인에서 보낸 후 건축을 전공했다. 전공을 살려 설계사무실에서 일했으나 10년 후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 그만뒀다는 작가는 세계여행을 시작한 후 범상치 않은 짐작을 하는 독자들을 향해 “그냥 게으르고 태평한 인간입니다”라고 작게 속삭인다. 작가가 여행 중에, 그리고 일상을 한 편의 여행처럼 사는 순간을 마주하던 중에 찍은 사진들도 글 속에 작은 벤치처럼 고요히 배어있다. 올해 4월에 전북대학교 내 ‘레드박스 갤러리’에서 사진전 ‘화양연화’를 열기도 한 작가는 여전히 책을 읽고, 사진을 찍고, 자신을 잃지 않게 잘 살려고 노력중이다. 혹여 ‘내가 잘 살고 있을까’ 생각이 든다면, 찰랑이는 마음은 두고 이 책을 집어보기를.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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