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프롤로그 ④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프롤로그 ④
  • 김재춘 기자
  • 승인 2019.08.16 16: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학농민군의 봉기를 그린 역사화. / 천도교 제공
동학농민군의 봉기를 그린 역사화. / 천도교 제공

 전라도로 인해 패전할 수 밖에 없었던 일군은 그로부터 3백여년뒤인 1903년 조선을 다시 침략하면서 남한대토벌(南韓大討伐)작전을 벌여 특히 전라도 일대에서 다시 일어난 의병들에 일대 복수전을 펼친다.

 일군은 토벌군에 내린 작전명령에 “원래 전라남북의 향민은 임진년의 옛날을 몽상하여 日人을 멸시하는 풍조가 있으므로 차제에 토벌을 결행하여 파견대의 전력을 기울이며 전라남북도의 산야를 유린하고 의병을 남김없이 근절, 황군의 엄숙과 용감한 무위(武威)에 경탄 전율케 하여 일본 역사상의 근본적 명예회복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전라도 의병들에 대한 잔인한 대 토벌로 임진년 패전의 치욕을 씻는 명예회복을 명령하고 있었으며, 이 작전기간중 전라도 산야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연출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전라도는 호국지지(護國之地)로서의 국가보훈은 커녕 서인(西人)이 동인(東人)을 몰아내기 위해 조작한 정치음모극에 불과했던 정여립 모반사건을 빌미로 전라도 인재의 관료 진출이 막혔고 집중적인 세수탈과 부패 관료들의 가렴주구의 무대가 되어 피폐일로를 걸어왔다.

 그로부터 다시 3백여년뒤 1910년 병술년(丙戌年), 일본은 임진년에 성공하지 못했던 조선점령과 대륙진출의 꿈을 마침내 성취시켰다. 이해 일본은 무력으로 대한제국(大韓帝國) 정부를 위협, 조일합방(朝日合邦)을 조인케 함으로써 한국을 식민지화 했으며 이어 만주로 진출, 중국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역사에 가정은 불필요한 일이나 만일 그때의 조선조정이 朝·日전쟁 최후의 승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바로 깨달아 백성들의 가슴속에 국가의 명예와 민족의 긍지 그리고 자존의 드높인 민족정기를 불어 넣어 주었더라면 3백년 뒤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로부터 다시 4백년이 되는 올해 1992년,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을 둘러싼 동양 3국의 국제정세는 결코 심상치가 않다. 일본은 2차세계대전의 패전을 딛고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다시 일어났다.

 경제대국은 손바닥만 뒤집으면 군사대국이 된다. 전통적으로 일본은 국력이 넘치는 대륙진출을 꿈꾸게 된다.

 1592년 임진년, 조선과 일본의 7년 전쟁은 조선의 최후의 승리로 끝났고, 승리의 주역은 전라도였다.

 그러나 종전 4백년이 되도록 한국인은 이 전쟁에서 조선이 승리했음을 깨닫지 못해왔고 전라도가 그 주역이었음을 더더구나 알지 못해왔다.

 이제 잃어버린 국가자존, 민족자존 그리고 전라도의 지역자존의 회복을 위해 그때의 전쟁은 다시 조명되어야 하고 전라도의 역할은 다시 확인되어야 한다.

 

 양재숙(梁在淑) 본사 수석논설위원

  옮긴이 김재춘(金在春)

 1992년 1월1일 게재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