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
  • 이정희
  • 승인 2019.08.0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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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방학이다. 반세기를 살아온 필자는 방학이 되면 타임머신을 타고 학창시절로 돌아간다. 시골에서의 방학은 학기 때와 큰 차이는 없다. 단지, 교실에서 벗어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마냥 즐거웠다. 아니 행복했다. 아마도 교실과 선생님으로부터 해방된다는 막연한 자유로움에 그냥 즐거웠던 것 같다.

 부안에서 선주(船主)의 딸로 태어난 필자는 학창시절을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보냈다. 그러나 필자의 추억은 물질이 아니라 바다에, 들에, 산에 알알이 새겨져 있다. 학교가 파함과 동시에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놀다 보면 얼굴엔 때꼬장물이 줄줄 흐른다. 사계절(四季節)도 구분되지 않는다. 언제나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때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자연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에, 머릿속에 너무도 생생하다. 자연 속에서 자란 덕에 필자는 자연과 교감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져 화가(?家)가 되었는지 모른다.

 현재 20~30대로 자란 우리 자녀들은 어떠한가. 자연을 잘 모른다. 대신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에 능하다. 게임천재들이다. 그런 자녀들을 보면 왠지 불쌍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은 세대차이일까? 청년이 된 우리 아들, 딸들은 필자의 세대와 달리 자연을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무엇이든지 경험해 보아야 더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또, 간접적으로 듣기만 하면 직접 보는 것보다는 확실하지 못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은 이 말도 바뀌었다.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

 ‘백 번 보는 것이 한 번 체험하는 것만 못하다’는 말로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무한경쟁구도 속에서 생존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 우리 아들, 딸들에게는 시간과 돈을 투자해 학과공부나 취업준비가 아닌 다른 일을 체험하기란 특별한(?) 용기와 결단이 요구된다.

 현실적으로 상급학교 진학이나 취업을 코앞에 둔 고학년은 어렵다면 저학년 아들, 딸들에게 방학기간을 이용해 관심분야, 혹은 평소 접하기 어려운 추천분야를 직접 체험토록 해보는 것을 권장하고 싶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가상현실 속에서, 게임 속에 빠져있는 아들, 딸들에게 자연의 참맛과 문화의 깊이를 체험케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시장이나 공연장을 둘러보고 끝낸다면 그 또한 학습수준에서 크게 탈피하지 못하게 된다. 비록 어설플지라도 직접 그림을 그려보고, 흙을 빚어 도자기를 만들어보고, 노래를 불러보고, 춤을 추고, 트레킹을 해보고, 요리를 해보도록 하는 각종 체험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토록 해보길 권장한다. 이것은 부모의 역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방학을 맞아 각 지자체와 기관, 단체들이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보는 것을 넘어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전북의 문화수준은 타지역과 비교해 매우 우수하다. 문화자원 역시 풍부하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판소리 단가 ‘사철가’의 한 소절이다. 유명 국악인이 아닌 송하진 전북도지사가 지난 7월 27일 미국 뉴저지 포트리 더블트리호텔에서 열린 전북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한 스타일 전시회’ 오프닝 리셉션에서 이 판소리를 불렀다. 판소리는 누구나 부를 수 있다. 하지만 행정가인 송하진 전북도지사가 이국인들이 많은 국제행사장에서 한국 전통가락인 판소리를 불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이색적이다.

 송하진 전북도지사가 그간 눈으로 보고, 귀로만 듣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학창시절부터 문화체험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면접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으로 인성, 창의성, 대인관계, 전문성 등을 고루 갖춘 사람을 선호한다. 자연과 문화를 자주 체험해온 사람들의 공통점이 바로 대인관계와 창의성으로 발휘되고 있다는 점이다.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 이 말이 새삼 마음에 파고드는 방학이다.

 이정희<전주대 평교 미술아카데미 교수/수채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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