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하 수상하니
세월이 하 수상하니
  • 안도
  • 승인 2019.07.3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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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 둥 말 둥 하여라. 김상헌의 우국충절(憂國忠節)의 노래이다. 필자는 요즈음 시퍼런 군부 독재 앞에 맨손으로 목숨 걸고 찾은 민주주의, 낮에는 노동현장에서, 또는 생활 전선에서 일하고 밤에는 촛불 들고 지킨 민주주의가 과연 이것이었던가 하는 회의감에 착잡하다. 날씨 탓일까? 가슴이 답답하고 덥다.

 군사독재시절이었으나 친 서민적인 정권인 때도 있었다. 과외를 금지시켜 돈 없는 아이들도 노력만 하면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었고 집값을 안정시켜 누구나 내 집 마련의 꿈을 꿀 수 있었다. 물가를 안정시켜 작은 월급으로도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재선을 위한 표 하나 얻으려는 선심보다는 서민의 눈물을 닦아 줄줄 알던 목민관들도 많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교육이 전면으로 허용되어 교육비는 천정부지 치솟아서 돈 없는 아이들은 학원도 못 보낸다. 따라서 이들이 좋은 대학가기는 하늘의 별 따기 되었다. 또한 가난한 젊은이들의 로망이던 법조인의 꿈은 귀족 같은 로스쿨 탄생으로 좌절되었다. 그리고 체감 물가는 폭등하여 하루 벌어 하루 먹기에 급급해서 저축은 꿈도 못 꾸는데 정부에서는 물가 상승률 수치가 낮다고 한다.

 여기에 요즈음은 친북, 친일, 친미니 이념의 고래 싸움 소용돌이에서 서민들의 등만 터지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과거에 발목 잡혀, 정치가들의 정권욕에 볼모 잡혀서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배운 역사에서는 왕들이 각처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경청하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을 때 태평천하를 이루었고, 가신들을 싸고돌았던 시대는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혼란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관료들을 보면 낙하산 타고 내려온 비전문가 들이 많다보니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이런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어쩌다 생각 없이 아는 체 했다가는 혼나는 세상이 되었다. 기껏해야 정치교수를 전문가라고 우대하여 모셨다가 마음에 안 들면 얼마 안 되어 갈아치우는 일들도 자행됐다.

 그리고 또 하나, 노태우 정권까지를 군부 독재시대로 본다면 민주화시대의 기점인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1993부터 벌써 26년이 흘렀다. 그런데 아직도 민주화 타령이니 언제나 민주화 논쟁이 끝이 날까?

 내가 아는 민주화는 정부의 의사 결정 과정에 국민의 의지와 판단을 반영하고 그에 따른 결과가 무엇이든 감당할 것임을 천명하는 정치 시스템이다. 그런데 국민 모두가 바라기는 했지만 터무니없는 약속으로 지켜내지 못할 때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하락한다. 그래서 실망한 국민들은 냉소와 환멸의 시선으로 정치 지도자들을 의심하거나 그들의 판단력을 우려하게 된다. 또한 정치 지도자들도 국민을 불신하게 되면서 국민 사이에 긴장이 형성된다.

 요즘 국회는 정쟁으로만 요란하지 민생을 위한 노력은 부족하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과 더불어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나”하는 반응이 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의정치 절차는 무시당했지만, 경제발전에 성공했던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가 강해졌다.

 그리고 우리가 살만하게 되니까 각자의 목소리를 높아지다 보니 도가 지나쳐 이젠 우격다짐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국회, 정당, 지자체, 사회단체, 각종 이익집단, 또한 각종 TV토론, 신문 사설, 인터넷의 열린 공간, 거기다가 영화, 소설 등에 이르기까지 우격다짐이 장마철 먹구름처럼 번지고 있다.

 말 없는 다수가 말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조용히 말하고, 품격 있고 조리 있게 차분히 말하면 씨도 안 먹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진실을 말하면 오히려 언어폭력에 몰매를 맞아 개망신당하기 십상이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관용이 생활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용이란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을 말하며, 배려는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고 그들의 처지를 보살피는 것을 말한다.

 먼저 여, 야, 정은 반목의 고리를 끊고 현안 논의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필요하다면 대통령은 자주 국회에 나와야 한다. 또 정당은 상대방에 대한 선정적인 비방을 그만하고 정책대결로 차별화에 나서야 한다. 국회가 곧 ‘무노동 무임금’의 산실이라는 불명예를 씻기 위해 정치인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안도<전북국어진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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