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과 유리절벽
유리천장과 유리절벽
  • 이윤애
  • 승인 2019.07.29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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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몇 주간 드라마에 빠져 있었다. ‘검블유(원제목: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는 포털업계에서 일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극 중에서 이들이 일하는 포털 업체에서는 검색어 조작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때에 따라서는 정부의 의지에 따라 검색어 순위가 변동하기도 한다. 필요에 따라 사용자의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하라고 청와대는 윽박지르기도 한다. 정부의 집요한 요구에도 포털 대표들이 거절하면서 통쾌하게 드라마는 끝난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업체는 사실상 대한민국을 양분하고 있는 포털이 연상되기도 하고 트렌디한 콘텐츠들은 시청자로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 드라마에 빠져든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직위에 상관없는 수평적 관계, 자유스러운 의사결정 방식과 일하는 패턴, 조직구성원의 다양성과 특성이 존중되고 조직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지점들에 동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자기주도적인 여성캐릭터들은 무한정으로 매력적이고 상쾌하다. 그동안 우리 드라마가 보여주던 방식과는 다르게 애써 설명하지 않더라도 신선한 재미와 선망을 보여준다. 적어도 드라마에서는 유리천장이나 유리절벽과 같은 성차별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맘에 든다.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직장 내 성차별 등으로 고위직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이 조어는 1970년에 미국의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처음 만들어 썼다는 데 아직도 우리 사회에 유효하게 작동되고 있다. 승진에서 뿐만이 아니라 고위직들의 연봉협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은 유리천장이라는 성차별을 뚫고 고위직에 올라가도 또다시 험난한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바로 ‘유리절벽(Glass cliff)’이다. 기업이나 조직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위험요소가 많은 직위에 여성과 남성 후보자 중 여성을 선택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일단 기업이나 조직이 위기에서 벗어나 정상화되고 더 나아가 잘되기 시작하면 여성에게 열렸던 문은 다시 닫힐 수 있다는 데 성차별의 새로운 형태로 주목하고 있다.

 ‘유리절벽’은 영국의 심리학자 해즐럼과 라이언이 ‘실패할 가능성이 큰 프로젝트 또는 위험을 안아야 하는 고위직 승진의 경우, 유망한 남성 후보자들이 이 일을 좀처럼 맡으려 하지 않다 보니 여성들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 데서 유래한 용어이다.

 유리절벽을 설명할 때 많이 인용하는 사례는 브렉시트(Brexit) 과정에서 영국의 메이총리로 어떻게 발탁되고 그 후 언론이 사사건건 총리를 어떻게 다루는지 소개한다. 또한 사례로 야후의 새로운 대표는 직원들의 풀타임 재택근무를 폐지한다고 발표하자 언론들은 ‘직원들의 사기를 꺾고 특히 여직원들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고 논평했다. 그런데 일주일 뒤 전자제품 체인인 베스트바이의 대표도 같은 결정을 했지만 특별한 논평 없이 사실을 전달하는 데 그쳤다. 야후 대표는 여성이었고 베스트바이 대표는 남성이었을 뿐이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정치인이 정치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눈물을 보이면 여성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압도되는 집단으로 매도한다. 하지만 남성정치인이 눈물을 보이면 감성까지 갖춘 유능한 인물로 묘사되곤 한다. 이를 두고 티리스 휴스턴은 ‘왜 여성의 결정은 의심받을까’라는 책에서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나 태도, 이미지에 우리 사회가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성역할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여성정치인들이 양적으로 증가하고 다양한 조직에서 관리직 여성들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주어진 자리의 문제를 수습하지 못한다면 여성들에게 절벽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노파심이 생긴다.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뚫었을지라도 어디서 누가 어떤 의도로 승진결정을 내리는지 알아보는 것 또한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윤애<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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