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내 안의 내가 폭발하는 것
분노는 내 안의 내가 폭발하는 것
  • 이소애
  • 승인 2019.07.25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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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조절장애인이란 갑작스러운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적이거나 공격적인 형태로 나타내는 것으로서, 과도한 분노의 표현으로 정신적 신체적 물리적 측면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피해를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분노는 불합리한 상황이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가져오는 사건이나 충격을 겪은 이후에 나타나는 자연적인 감정으로서 긍정적인 기능을 가지기도 하지만, 부당함, 좌절감, 무력감과 같은 부적응적인 형태로 지속할 경우 격분이나 울분으로 이어지고 개인의 의지로 조절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특히 자녀로부터 홀대를 당하면 더욱 그렇다. 요즈음 노인들의 두려움은 자녀들이 부모를 돌보기가 어려워 요양원으로 보내어질까 하는 무서움이 항상 곁을 떠나지 않는다. 이처럼 두려움에서 눈치를 보다가 폭발하는 분노조절장애인이 주위에 많이 있다.

 전주 수목원에서 만난 무시무시한 나무로부터 충격을 받았다. 사람 사는 세상이 보였다. 주엽나무와 조각자나무라는 명찰을 달고 버젓이 땅에 뿌리를 박고 하늘의 햇볕을 떳떳하게 받는 나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온몸이 가시로 변신해야 하루를 산다는 나무. 어쩜 파편화되어가는 가족의 관계에서 나무는 날카로워져야 살 수 있다는 삶을 터득했을 거다.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아픈 고통을 뾰족하게 세상에 묵언하는 표징인지 모른다. 아픈 가시를 몸으로 휘감고라도 목숨을 연명해야 한다는 처절한 메시지를 인간들에게 호소하는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영화 <라이온 킹> (2019 제작, 감독 존 파이브로)에서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고심하는 어린 사자 ‘심바’의 모습에서 순간의 답을 얻었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태어난 ‘심바’의 고뇌는 햄릿의 고민과 다를 바 없었으며 바로 나의 운명의 갈림길에서 괴로워하는 삶과 같았다.

 근심 걱정을 잊고 모든 것이 잘될 거라는 <하쿠나마타타>(hakuna matata)는 마치 기도문과 같았다. 욕심과 근심을 떨쳐버리면 다 잘 될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나를 변화시킨다.

 뙤약볕에 타들어 가는 자갈밭의 잡초처럼 희망을 던져버리면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감이 더 깊어진다.

 분노는 내 안의 내가 밖으로 분출하는 자기의 상징이며 마음의 표지이다. <라이온 킹>에서 말하는 사자 ‘심바’처럼 모든 것이 잘될 거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억지로라도 조각이불같이 꼼꼼하게 꿰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분노가 가라앉지 않을 때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장에 가보아도 좋다. 전주천 뚝방길 건너 투구봉과 검두봉 사이에 있는 다리 매곡교를 건너면서 옛날 나의 모습을 생각의 크레파스로 그려보는 일도 도움이 된다.

 참으로 오랜만에 남부시장 콩나물국밥 집도 기웃거려보고, 어물전 가게에 들러 홍어 한 마리에 얼마냐고 말도 걸어보다가 간갈치 팔던 할매 안부도 물어보는 사람 재미가 쏠쏠하였다.

 찌그러진 양철 대문을 열고 신문지에 돌돌 싼 간고등어를 들고 오시는 아버지의 어깨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는데, 연탄불에 지글지글 구운 간고등어를 손으로 가시를 발라 주시던 어머니의 땀방울이 참으로 고마웠었는데, 순간 뇌리를 스치는 그리움이 감정을 식힌다.

 전주천 자갈밭 옹기장사 아주머니는 아슬아슬하게 포개놓은 항아리에 희망을 둘러메고 자식을 키웠다. 그 아들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며 일 년이 넘도록 자식 자랑했었다. 빈자리에 그늘이 짙다.

 싸드락싸드락 느린 걸음으로 쇠전다리에서 좌판을 벌여 놓고 졸고 있는 아낙을 깨워 파 한 단 사노라면 상추 몇 잎 덤으로 주는 시장이다.

 마침 친절한 후배가 분노의 치료제로 아포가토(affogato)를 맛보라고 한다. 아늑한 홈 카페다. 아이스크림 위에 에스프레소를 끼얹어 먹는 디저트였다.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쓰디쓰고 쌉싸름한 에스프레소가 만나 환상의 맛을 만들어낸 디저트였다. 아포가토를 혀에 녹이는 동안 뾰족하고 날카로운 생각은 서서히 녹아들고 있었다. 분노를 아포가토에 끼얹으며 내 안의 폭발물을 제거하고 있었다.

 이소애<시인/전주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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