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스스로 배울 수 있을까?
아이들은 스스로 배울 수 있을까?
  • 진영란
  • 승인 2019.07.2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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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우리 직업놀이해요! 지금 영어로 직업에 대해 배우고 있고, 글로벌 연구소에서 나오신 분들도 미래 직업에 대해 이야기 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도 직업에 대해 더 알아봐요.”

만들기 좋아하고, 그림 잘 그리는 아이인가 수업을 제안한다.

“그래? 좋은 생각이네. 아인이가 계획을 한 번 짜 봐!”

그렇지 않아도 사회 경제 단원을 2학기에 ‘비지니스 페스티벌’로 진행해 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인이가 선수를 친다. 내심 ‘애가 무슨 계획을 거창하게 짜겠어? 그러다 포기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며칠 후 아인이가 계획을 말한다.

“선생님, 우리가 일주일 정도 기간을 정해 놓고, 직업에 대해 탐구해 본 다음에요. 자기 직업과 관련한 것들을 만들어서 파는 활동을 해 보면 어때요? 재료랑은 각자 준비하고, 가게에서 이익이 생기면 각자 갖고요.” 상당히 구체적인 제안을 다시 해 온다. 마침 학부모님께 우리의 배움의 장을 열 계획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아인이의 제안을 말해 주었다. 2학년 때 해 본 가게 놀이가 재미있었다며 아이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일단 관심분야가 같은 아이들끼리 모였다. 크게 만들기와 패션, 디저트와 커피 만들기, 와일드 푸드 판매, 만화방, PC방으로 나뉘었다. 각자 만들거나 판매하고 싶은 것들을 정하고 조율하면서 2주간의 직업놀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2학년 때 즐겁게 했던 가게 놀이를 더욱 심화시키면서 경제와 관련된 성취기준까지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 요식업 분야는 보건증과 부동산 임대차 계약서를 첨부한 영업 허가증을 받도록 했다. 아이들은 그 기간 동안 각자의 노동의 대가로 허가비용을 충당해야했다. 덕분에 평소에 지겹게 여겼던 교실청소, 수학문제 풀기, 그리기 등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모둠원이 마음을 모아서 영업허가를 받고 난 후에는 본격적으로 가게 인테리어에 들어갔다. 각자 간판을 만들고 메뉴판을 제작했다. 물론 영어와 한글을 동시에 써야한다는 조건을 내걸자 민원이 빗발쳤지만, 이번 직업놀이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성취기준을 각 과목별로 살펴본 덕분에 잘 수용해 주었다. 아이들은 태블릿으로 가게 이름과 메뉴를 번역하느라 머리를 맞대고 마음까지 잘 맞추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

 그렇게 정해진 가게는 골든보이의 PC방(닌텐도로 게임하면서 라면과 과자 판매), 와와 만화 문구(만화책 대여, 간식 판매, 사격장), 디저트 카페(직접 만든 빵과 음료, 커피 판매), 섬머플라워(네일 아트, 머리 장식품, 악세사리 판매), 돌아온 성난 메뚜기(메뚜기 요리 판매)였다. 다들 개성과 아이디어가 넘치는 가게들이었다. 맡은 역할도 요리를 잘 하는 아이는 제빵, 계산을 잘 하는 아이는 영수증 발급과 판매 장부 정리, 설거지 등으로 분업화하였다. 예상도 못했는데 한 아이가 아르바이트를 자원해서 자영업자 뿐만 아니라 일용직 노동자를 체험할 수도 있었다. 이 학생은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했다.

 드디어 직업놀이의 막이 오르는 날, ‘장사가 잘 될까?’라는 걱정은 온데간데 없고, 다들 손님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진땀을 빼야했다. 온 학교가 우리 4학년의 직업놀이에 소비자로 참여해 주었다. 아이들은 미리 준비한 영수증 양식에 영수증을 발급할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밀려오는 손님을 걱정할 정도였다. 배움 열기에 오신 부모님들께서도 소비자로 활동에 참여해 주셨다. 수제로 만든 헤어핀 2개를 300원에 사신 어머님께서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셨다. 디저트 카페는 빵 굽는 속도가 손님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고, 재료가 너무 빨리 떨어져 버렸다. 메뚜기 가게는 계속되는 궂은 날씨와 이른 계절 탓에 메뚜기를 공급하지 못해서 당일 아침에 자두와 보리수 열매, 삶은 밤과 음료수로 급히 메뉴를 전환하는 순발력을 발휘하기까지 했다.

 가게를 닫고 아이들끼리 둘러 앉아 정산을 시작했다. 판매금액에서 생산비용을 제외한 수익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자 아이들이 거칠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정해진 절차였기에 저항이 잦아들긴 했지만 무척 억울해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수익금이 20000원을 초과하면 20%의 세금을 부과했다. 골든보이의 pc방은 간식 단가를 너무 낮게 책정하는 바람에 5700원의 손해를 봐야했다. 세금이 면제 되었다. 4개의 가게에서 걷은 세금은 모두 10800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세금을 걷어갔다고 항의를 하다가 찬우가 “그 돈은 어디에 쓰실 거예요?”라고 묻는다. 그 질문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장사를 잘못해서 적자가 난 가게를 도와줄 수도 있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400원을 번 학생을 지원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을 도울수도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럼 우리 학동마을 갈 때 봉선할머니랑 은석 할아버지께 영양갱 만들어다 드려요!”라고 제안한다. “그래? 좋은 생각이네. 재료비가 모자랄 수도 있지만 그건 국가에서 보조하도록 할게요. 세금은 이렇게 복지에 쓰는 거예요.” 그제서야 아이들이 억울함이 풀렸는지 웃는다.

 “다음에는 물건값을 알아보고 가격을 정할래요”

 “좀 더 넓은 곳에서 하고요, 빵도 미리 구울래요.”

 “다음에는 메뚜기가 잡히는지 안 잡히는 알아보고 메뉴를 정할게요. 가을에는 메뚜기가 많이 나오니까 그때는 꼭 성난 메뚜기 요리할 거예요.”

 다짐과 반성도 가지가지다.

 “아이들이 나를 고용해 주지 않으니까 힘들었어요. 돈을 못 벌잖아요.”

 “2학기 때 한 번 더 하면 진짜 잘 할 것 같아요. 우리 또 해요. 네?”

 아이들이 스스로 제안하고 기획하고 주도한 수업에서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스스로의 실수를 통해서 배워 나가는 것이 교사의 친절한 안내보다 훨씬 값지다는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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