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괜찮아, 나라만 잘되면 상관없어”
“난 괜찮아, 나라만 잘되면 상관없어”
  • 김창곤
  • 승인 2019.07.2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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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가 깝쳐대니 친일 매국노가 신났구나’. 농민회원 등 17,8명이 이런 주장을 새긴 패널들을 들고 있다. “친일 매국노 복권에 고창 주민 이용 말라”는 구호도 나온다. 제헌절인 17일 오후 전북 고창군 문화의 전당 입구에서였다. 인촌 김성수(1891~1955)의 고향에서 그를 기리는 ‘인촌 사랑방’이 발족하고 있었다.

 54년 전 한일협정과 배치된 대법원 판결 및 정부의 소극적 처리를 놓고 일본이 보복해오면서 가뜩이나 양국 대치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정권의 ‘죽창’ ‘의병’ ‘이순신 열두 척’ 등 반일 발언은 “애국이냐 이적이냐”라는 주장으로 증폭돼왔다.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 약사들은 일본 의약품 판매 중지까지 ‘결의’했다. 말 한마디에 ‘토착왜구’로 몰린다.

 서울과 광주 전주에서까지 온 사랑방 참가자는 약 500명. 첫 축사에 나선 김진현(84) 전 과기처장관부터 격앙했다. 민주화과정 시절, 동아일보에서 칼럼을 쓰며 담배 몇 갑씩을 태우면서 숱한 밤을 새웠다고 했다. 그는 “그 동아일보가 인촌과 함께 정체성이 훼손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참을 수 없다”고 비통해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외교 정치 경제 사회 교육산업 노동 등 모든 분야에서 국난에 처했고 ‘퍼펙트 스톰’에 들어가 있다”며 “국가가 소멸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걱정까지 든다”고 했다.

 인촌은 일제 치하 민족의 실력을 키우겠다며 사재를 털어 경성방직과 동아일보를 세우고 중앙학교와 보성전문을 일으켰다. 남시욱(82) 화정평화재단 이사장은 “많은 고뇌가 있었고 실수도 있었다”며 “그러나 현저히 불공정한 잣대로 애국자를 친일파로 재단한 것은 말이 안 되는 국가 손실”이라고 했다. 그는 “오늘의 위기와 파탄은 인촌을 경솔히 친일파로 만든 정치 방향 및 이념과 관계없다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연단에 섰다. 인촌은 당대에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공사(公私)부터 뚜렷했다. 공적으론 의로웠고 사적으론 인정을 베풀었다. 27세 때 중앙학교 교사로 인촌을 만나 교감으로까지 7년을 모시며 그는 두 가지를 배웠다고 했다. 인촌은 자신보다 유능한 사람에겐 뭐든 양보하고 뒤에서 도왔다. 아첨하는 사람만 멀리했다. 인촌에게 편가르기는 없었다. 김 교수는 “야당이 인촌 생전엔 한 번도 분열하지 않았으나 돌아가시고서 한 번도 합치지 못했다”고 돌이켰다.

 일제 시절 최고 예술인으로 음악가 안익태와 무용가 최승희가 있었다. 안익태는 일본 큰 행사 음악을 지휘했고, 최승희는 세계를 순회했다. 김 교수는 “안익태는 대한민국에 있어 친일파가 됐고, 최승희는 김일성과 함께하면서 그런 평가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인촌 같은 분이 보이지 않게 싸우지 않았다면 독립할 수 없었다”며 “그가 친일파냐 아니냐는 논란은 50년 뒤 의미가 없게 되니 마음 쓰지 마라”고 조언했다.

 고려대 백완기(84) 명예교수는 “인촌이 아니었으면 3.1운동은 불가능했다. 대한민국이 탄생할 수도, 이승만 대통령이 나올 수도 없었다”고 단언했다. 28세의 인촌은 송진우, 현상윤과 함께 중앙학교 숙직실에서 3.1운동을 준비하며 종교지도자들을 규합하고 거액을 지원했다. 인촌은 해방 후 그의 사랑방에서 유진오에게 헌법 초안을 맡겼다. 농지개혁도 앞장서 한민당과 지주들을 참여시켰다. 자유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해 인촌은 이승만과 뜻을 같이했다. 백 교수는 “대한민국 탄생을 방해한 사람들까지 건국훈장을 받는데 그 산모를 친일파로 낙인 찍고 있다”고 한탄했다. 인촌은 그러나 무덤에서도 “난 괜찮아, 나라만 잘되면 상관없어”라고 하실 것이라고 했다.

 친일파 논란으로 인촌 생가엔 발길이 뜸해졌다. 명창 김소희 생가만 나온 관광지도가 고창 음식점에 놓여 있다. 인촌 정신을 알리고 그가 꿈꾸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인촌사랑방 회원들이 다짐한다. 인촌 유산은 고창과 전북, 대한민국의 보배다. 사랑방에 갈채를 보낸다.

 김창곤<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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