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 Me Tomorrow!
Give Me Tomorrow!
  • 김석기
  • 승인 2019.07.2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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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겨울, 개마고원 장진호에 혹독한 추위가 휘몰아쳤다. 당시 100년 만에 한반도를 찾아왔다는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미 해병 1사단은 중공군 7개 사단과 사투를 벌였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중공군과 또 다른 적 매서운 추위와도 싸워야 했다. 장진호 전투다.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1일까지 장진호∼함흥 사이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하갈우리를 거쳐 고토리, 황초령으로 이어졌다. 스미스 소장은 “우리는 후퇴가 아닌 새로운 방향으로 공격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전투는 흡사 지옥과도 같았다. 미 해병대원들은 고립되고 통신조차 두절됐다. 중공군이 일본식 소총과 방망이 수류탄으로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전투가 어찌나 치열했던지 훗날 ‘지옥불 계곡’이라 불렀다. 밤에는 추위에 참호를 지키던 병사가 동사하기도 했다. 이 끔찍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참전용사를 가리켜 ‘The Chosen Few’라고 지칭한다. 글자 그대로 풀면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은 선택받은 소수란 의미다. 당시 미군에게는 한국어 지도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장진호의 일본식 독음인 초신(Chosen)이 붙었다고 한다.

장진호에서 철수하던 날 아침, 기자가 얼어붙은 콩 통조림을 손으로 녹이고 있는 한 병사에게 다가갔다. 병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손가락은 동상에 걸려 거의 쓰지 못하는 상태였다. 기자는 “내가 만약 전능한 하나님이어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다면 무엇을 갖기를 원합니까?” 라고 말을 걸었다. “Give Me Tomorrow!”(나에게 내일을 주시오!) 병사의 대답이었다. 장진호 협곡에 갇힌 병사들은 하나같이 ‘내일’을 기대할 수 없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전투상황에서 한 가지 간절한 소망을 바랄 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내일’이라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밝은 태양을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가장 강한 무기는 ‘내일’의 희망이었다. 내일의 희망마저 없다면 살아 있어도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장진호에서 느꼈던 절망속의 ‘내일’이 바로 대한민국의 ‘오늘’이리라.

세계 3대 동계전투 중 하나로 불리는 장진호 전투는 무려 10배가 넘는 12만명의 중공군과 영하 30도~40도를 오르내리는 개마고원의 살인적인 추위, 두 개의 적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이 전투에서 4,500여명이 전사하고 7,500여명이 부상당했다. 6?25전쟁에 참여한 유엔군은 195만여 명, 이중 약 4만여 명이 전사했고, 부상?실종?포로까지 합치면 무려 15만여 명에 달한다. 그들이 한국이라는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처럼 희생을 치른 것은 오직 ‘자유’와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6.25전쟁 당시 유일한 여성 종군기자로 현장에 늘 함께했던 고 마가렛 히긴스. ‘드레스보다 군복이 더 어울리고, 얼굴에 화장품 대신 먼지와 진흙을 바른 여성’이라는 언론의 평을 들을 정도로 전쟁터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던 그녀는 1951년에 쓴 비망록 ‘자유를 위한 희생’(원제 : War in Korea)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한반도에서 우리는 준비하지 않은 전쟁을 치름으로써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또 승리는 많은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패배할 때 치러야 할 비용보다 훨씬 저렴할 것이다.”

지난달 27일, 자유와 평화의 신념으로 참전했던 스무살 전후의 청년들이 이제는 구순 노병이 되어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전쟁의 기억과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온 노병들은 유엔군 전사자 명비(名碑) 앞에 국화 한 송이를 헌화하고 거수경례했다. 치열했던 전쟁터를 겪고 69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노병들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 있었다. 우리는 유엔참전용사들이 절망 속에서 그토록 소망했던 ‘내일’을 살아가고 있다. 그분들에 가장 큰 보답은 아마도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일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는 대한민국의 ‘내일’이기 때문이다.

7월 27일「유엔군 참전의 날」, 우리가 꼭 기억할 날이다.

 

 김석기 / 전북동부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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