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치인을 떠나보내며
한 정치인을 떠나보내며
  • 채수찬
  • 승인 2019.07.18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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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거리 싸움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나름대로 자유로운 목소리를 냈던 정치인들 중의 하나인 정두언 의원이 갑자기 세상을 등지고 떠났다. 일년전 떠난 노회찬 의원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 떠오르는 건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인간미 있고 똑똑한 정치인들이었는데….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정치는 힘든 일이다. 생각이 다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생긴 내상(內傷)이 있었을 것이다. 각광 속에서 바삐 움직일 때에는 이를 자각하지 못하다가 코너에 몰린 어느 순간에 견디기 어려운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정치는 화려해 보이지만 한가지 피할 수 없는 본질적 속성이 모순이다. 모순을 소화할 수 있어야 정치를 계속할 수 있다. 이에 대응하는 세 가지 스타일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유능하지만 무자비한 사업가처럼 얼굴에 철판을 까는 스타일이다. 이들은 풀어야 할 문제를 대체로 이해하고 스스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면서 풍파를 헤쳐나간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부류에 속할 것이다. 또 하나는 무책임한 대리인처럼 무감각한 스타일이다. 풀어야 할 문제들을 잘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문제해결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며 그저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에 만족하는 스타일이다. 최고지도자 중에는 이런 스타일이 드물기는 하나 없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하나는 문제들을 이해하고 있으나 풀기 어려움을 깨닫고 겉으로는 똑똑하고 의연하게 행세하나 안으로는 예술가처럼 고뇌하는 스타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범주에 속하지 않았을까? 예술가 타입의 정치인들은 어느 순간 고뇌로부터 스스로 해방되고 싶은 욕구를 느끼기도 할 것이다.

 필자는 4년의 짧은 의정생활을 했다. 그동안 필자가 없었으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일이 필자가 나서서 이루어진 일들도 있고, 잘못될 수 있었던 일을 필자가 막은 때도 있다. 물론 그때에 했어야 할 일을 못한 일도 많다. 지나고 보니 보람과 회한이 교차한다. 공적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당시든지 지나고 나서든지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많은 부분은 그저 기억도 없이 사라질 뿐이다.

 개인적으로 보면 정치는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경험이다. 대개 올라가는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내려오는 과정은 갑자기 이루어진다. 내려오고 나서는 반드시 후유증이 있다. 미국 대통령을 두 번 하고 내려온 사람들도 권력의 금단현상을 겪는다. 필자도 패거리 정치의 와중에서 공천에서 탈락하고 의정생활이 갑자기 끝난 뒤 몇 년간은 금단현상을 경험했다. 이런 과정이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몇년전 많은 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걸 보면서 자신의 수치스러움도 받아들이는 겸허함이라는 덕목에 대해서 칼럼을 썼던 기억이 난다. 물론 출구 없는 아픔 속에서 세상을 떠나는 선택을 한 분들에게 이러쿵저러쿵 얘기할 도덕적 권위가 필자에게는 없다. 그 아픔을 공감한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죽음 앞에 서게 되면 늘 아옹다옹 다투며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산 자들은 잘났다고 우쭐거리며 산다. “누구는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희망이 되고….” 하는 요즘 인기 드라마‘60일 지정생존자’의 대사가 생각난다.

 인생은 수레이다. 사람들은 그 수레에 무엇을 실을 것인가 고민한다. 또 무엇이 실렸느냐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한다. 그러나 인생은 수레일 뿐이다. 수레 자체가 귀한 것이다. 삶 자체가 소중한 것이다. 옳은 정치 그른 정치 다 떠나보내자. 아옹다옹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이 경이로운 삶을 살아가자. 산 자들을 위해서 골치 아픈 정치도 하며……. 

 채수찬<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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