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 전성시대가 불편한 이유
수미 전성시대가 불편한 이유
  • 장상록
  • 승인 2019.07.1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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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에 있는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소에 다녀왔다. 감자 때문이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은 감자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감자의 고향은 안데스 고원이다. 서늘한 기후에서 살아온 감자에게 한국은 너무도 가혹한 땅이다. 추위와 서리는 물론 혹서와 장마까지 어느 하나 편안한 것이 없다. 하지 감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하지가 지나면 더위와 장마로 인해 감자가 더 이상 생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악조건을 감안하면 한국 감자 생산성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농업인의 노력과 건전 씨감자 공급 그리고 체계적인 병해충 방제 관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모든 중심에 고령지농업연구소가 있다. 이번 교육과정은 이영규 박사가 과정장이 되어 관련 연구진에 의한 이론 및 실습과정으로 진행되었다.

 감자는 비타민C가 사과의 4배에 달할 뿐 아니라 열에 의한 파괴도 거의 없다. 또한 김치를 먹는 한국인에게 적잖게 문제가 되는 나트륨의 체외 배출에도 도움을 준다.

  이번 교육과정에는 감자 시식회도 있어 다양한 품종의 감자를 맛볼 수 있었다. 그중엔 고령지농업연구소에서 해외시장을 겨냥해 육종한 아리랑 1호도 포함된다. 그런데 수 십 종의 감자를 맛보면서 가진 의문이 있다. 왜 한국인은 수미를 그토록 좋아하는 것일까.

  수미는 미국에서 육종한 것을 1970년대 후반 국내 도입한 품종이다.

  기호는 설명할 수 없다. 모양은 동그랗고 속살은 하얀색을 띄어야하며 눈이 깊지 않은 감자.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감자다. 수미가 대표적이다. 흔히 하지 감자라고 하는 봄 보급종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실 경작면적은 보수적으로 평가해도 50%를 넘는다.

  좋은 품종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것이 우선이다. 다음으로는 농업인이 재배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적어야 한다. 한국 감자 시장에서 수미는 그 두 가지를 고루 충족시키는 품종임은 분명하다. 그럼 수미를 넘어설 품종은 정말 없는 것일까. 수미처럼 동그란 모양과 하얀 속살을 가진 감자가 재배노력이나 생산성에서도 동등하거나 우월하다면 남는 것은 맛의 문제다. 그런데 이거야말로 개인의 기호가 아닌가.

  박영은 박사가 준비한 수 십 종의 감자를 맛보면서 내겐 수미보다 다미, 금선, 새봉, 고운과 같은 품종의 식미와 식감이 더 우수하게 다가왔다. 분명 내 입맛은 한국인을 대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수미 전성시대가 불편한 이유가 있다.

  박영은 박사가 농업인 경매사를 대상으로 다양한 품종의 감자 시식회를 개최했을 때다.

  그때 한 경매사가 이렇게 품평을 했다고 한다. “수미에 비해 맛이 없다.”

  그에게 있어서 기준이 되는 감자의 맛이 수미라면 그것은 그의 기호다. 그것은 내가 고운이나 금선을 맛본 후 평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그가 농산물 경매사라는 점이다.

  그의 개인적 기호가 소비자의 선택 기준이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미 이외의 품종은 경매사에게 선택받는 것에서부터 가격부분 까지 저평가를 받게 된다. 농업인이 수미 재배를 선호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여기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 소비자의 선택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행위다. 수미와 금선 중 어떤 감자를 선택할 것인지는 소비자의 몫이지 경매사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

  경매사가 수미를 좋아한다면 그는 그 감자를 먹으면 된다. 하지만 농산물 경매시장에서 경매를 하는 순간은 자신의 기호가 아닌 소비자의 선택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또 하나는 신품종을 개발한 연구진들의 노력이 현장에서 사장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나의 품종을 새로 만들기 위한 노력과 시간은 연구진 개인의 성과가 아닌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사회적 손실이다. 공정한 경쟁은 수미에게도 예외가 되어선 안 된다.

 고령지농업연구소에서 육종한 추백은 북한의 정부 보급종이 되었다.

  조지홍 박사를 비롯한 고령지농업연구소 감자 팀에게 경의를 표한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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