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자의 자질이 필요하다
조정자의 자질이 필요하다
  • 김동근
  • 승인 2019.07.17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과 중국, 우리나라와 일본 등과 같은 국가간의 갈등을 비롯하여 국가와 지역간의 갈등, 지역들간의 갈등, 지자체와 주민들간의 갈등, 보수와 진보간의 인념갈등, 노사갈등, 빈부갈등, 세대갈등, 종교갈등, 남녀갈등 등 수많은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국가간의 갈등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가정책에 대한 지역민들의 반대와 같은 국가와 지역간의 갈등도 범위가 넓다. 노사간의 갈등도 회사나 지역, 단위 산업에 머무르지 않고 전국 단위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갈등이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사회통합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6년 발간한 ‘사회통합 지수 개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이스라엘 다음으로 사회통합지수가 낮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갈등은 비용을 초래한다. 조그만 영역에서의 갈등도 비용이 발생하는데 국가적인 갈등은 말할 것도 없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10년 ‘한국 사회갈등의 현주소’라는 보고서에서 사회적인 갈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이 연간 최대 246조에 이른다고 추산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6년 ‘사회적 갈등의 경제적 효과 추정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사회적 갈등 수준이 OECD 평균 수준으로 개선되면 실질 GDP가 0.2p 정도 추가상승할 것으로 분석한다.

 사회적 갈등을 조그만 해결해도 갈등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면 그 갈등을 조정하는 조정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적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치인, 지자체단체장을 비롯한 사회구성원들이다. 이들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하는데 이들에게는 조정자로서의 자질도 필요하고 버려 할 편견도 존재한다.

 헬렌 켈러는 “눈이 멀어지면 사물과 멀어지고 귀가 멀면 사람과 멀어진다”고 했다. 헬렌 켈러가 말한 바와 같이 조정자는 갈등당사자들과 대면하면서 사적인 감정으로 눈을 감거나 귀를 닫으면 제대로 사물을 볼 수도 없고 소통할 수도 없다. 조정자는 눈을 뜨고 귀를 열면서 이해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신뢰를 얻고 유연성이 있는 판단을 하여야 한다. 즉 조정자의 자질로는 경청하는 것과 신뢰를 얻을 것 등이 중요하다.

 경청(敬聽)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듣는다는 뜻이다. 청(聽)이란 한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귀 이(耳)+임금 왕(王)+열 십(十)+눈 목(目)+하나 일(一)+마음 심(心)’을 합한 글자다. 귀를 임금처럼 생각하고 열 개의 눈으로 하나의 마음을 읽는 뜻이다. 경청이야말로 갈등을 조정하는 데 있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일 처리는 우선 당사자의 말을 잘 듣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경청의 반대는 무시(無視)다. 무시는 앞에 사람이 있어도 투명인간 취급하며 아예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아예 상대방을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다. 상대방은 자기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니 정말 속이 뒤집히고 상처받을 일이다. 경청과 무시는 하늘과 땅의 간격처럼 어마어마한 차이다.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경청이고 가장 나쁜 말이 무시다. 경청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 자체로서 문제의 반은 해결된다.

 조정자가 갖춰야 할 또 다른 자질로서는 신뢰이다. 조정자가 어떤 입장을 갖고, 어떤 절차에 따라 조정을 하는지가 갈등 당사자들에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닐 때가 있다. 대신 조정자가 ‘누구인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신뢰는 행위자의 의도에 대한 믿음이다. 평판이라는 하는 말 속에 신뢰가 녹아 들어가 있다.

 신(信)이란 한자는 사람 인(人)과 말씀 언(言)을 합한 것이다. 사람 말을 믿는 것이 신이다. 신뢰는 영어로 trust인데 이 단어는 신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믿고 맡긴다는 뜻이다. 신뢰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공공갈등 관리를 위한 조정 과정에서도 신뢰는 중요하다. 조사 결과, 갈등 상황에서 정부의 개입 여부를 기대하는 정도는 정부에 대한 신뢰도와 비례했다. 정부를 신뢰할 수 있으면 심한 공공갈등 상황에서 정부의 개입을 기대하지만,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 상황에선 당사자 간의 해결을 훨씬 더 선호한다. 신도시개발, 혐오시설 유치 문제 등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을 때 많은 지자체에선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주민들이 지자체를 믿지 않으면 그러한 노력은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결국 핵심은 신뢰 수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조정자는 공정성·중립성·균형감각을 갖춰야 한다. 조정자의 길은 구도자(求道者)의 길과 같다. 조정자가 아무리 공정하게, 법과 양심에 의해 일을 처리했다고 해도 이해당사자 어느 일방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조정자는 불신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조정자는 항상 자신을 경계하고 처신을 잘하며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신독(愼獸)의 길을 걸어야 한다.

 김동근<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