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너머 저쪽
산 너머 저쪽
  • 김동수
  • 승인 2019.07.15 18: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복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속을 어떤 이는 ‘내일’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산 너머 저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오늘보다는 내일, 이곳보다는 저곳을 그리워하며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 산 너머 저쪽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갖고 오늘을 살아간다.

 그러나 산 너머 저쪽은 없다. 그런데도 독일의 시인 칼 붓세는 「산 너머 저쪽」을 아래와 같이 노래하고 있다.

 산 너머 저쪽 하늘도 멀리

 행복이 있다고 남들이 말하기에

 아, 나도 남들을 따라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다네

 산 너머 저쪽 하늘도 멀리

 행복이 있다고 남들이 말하기에

  - 칼 붓세(1872-1928)

 ‘산 너머 저쪽’에 우리네 삶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가보지 못한 세계, 지금은 여기에 없지만, 앞으로 있어야 할 그곳은 시인이 아직 도달해보지 못한 피안(彼岸)의 세계다. 그래서 칼 붓세도 ‘산 너머, 언덕 너머 하늘 먼 곳에 행복이 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어느 날 친구를 따라 행복을 찾으러 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다고.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직도 산 너머 하늘 먼 곳에 행복이 있다’고 말들을 한다.

 청마 유치환도 그의 시 「깃발」에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자의 손수건’ 그 손수건이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아우성을 치고 있다고 한다. 시적 자아는 이처럼 ‘본래의 자기(Own Nature)’ 를 찾아 그곳을 ‘산 너머’ 혹은 ‘내일’이라 칭하며 그리워하고 있다. 분열되고 훼손되어 불완전하기에, 인간의 모든 이념은 궁극적으로 완전성을 지향한다. 그것은 인류가 일찍이 잃어버린 에덴에 대한 향수요, 하나의 유기체로서 완전한 존재를 꿈꾸는 인간 본연의 그리움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인지 행복을 찾았다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기에, 아니 우리의 마음속에서 행복과 불행이 뒤엉켜 숨어 있기에 행복은 먼 곳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외부적인 조건이나 환경에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창고 속에 행(幸)과 불행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기에 내 마음속, 오늘의 항복을 찾지 못하면 내일도 없고, 자기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저곳의 피안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내 안에 있지만, 그중에서 불행의 카드가 아닌 행복의 카드를 찾아내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만끽하게 되는 안도의 한숨, 그게 바로 행복이요, 정신적 안정이 아닌가 한다. 그러기에 행복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칼 붓세의 시처럼 ‘산 너머 저쪽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내 마음속에 있던 오늘의 이 자리를 제대로 찾아 새로운 삶을 출발하게 되었을 때 얻게 되는 안도의 기쁨인 것이다.

 여산의 실안개 비 절강의 물결이여(廬山煙雨浙江潮)

 가보지 못했을 땐 천만 가지 한이 남더니만(未到千般恨不消)

 가서 보고나니 아무 별것 없고(到得還來別無事)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그 물결이었네(廬山煙雨浙江潮)

 -소동파(1037~1101)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여산의 안개비 내리는 풍경과 절강의 물을 읊은 시인데, 가보고 싶어 할 땐 가보지 못한 것을 탄식했는데, 막상 가서 보고 나니 별것 아니더라는 시이다. 그냥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안개비’와 ‘물결’뿐이었다는 쓴 시다.

 그러나 조병화 시인은 말한다. 그의 시 「낙엽끼리 모여 산다」에서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고 했다. 설령 그날이 그저 ‘안개비’이고 ‘물결’ 뿐이라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내일이 아직 내 마음 속에 살아 있기에, 그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 고독과 슬픔을 마시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고. 그게 인생이고 우리네 삶이 아닌가 한다.

 김동수<시인/온글문학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